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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란이묘·거북너머… 숨은 사연 위로 똑소리 나게 달린다

 

알고 달리면 재미있는 코스 지명

`2014년 2월 23일 경기도내 마라톤대회로는 최초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으로부터 공식 코스 공인을 받은 2014 경기국제하프마라톤대회 코스에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지명이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비롯해 팔달문시장 등 전통시장을 지나는 경기국제하프마라톤대회 코스 중 알고 달리면 재미있는 코스 지명을 소개한다.

■ 수원종합운동장

마라톤의 출발지이자 골인지점인 수원종합운동장은 1971년 개장한 종합경기장으로, 주경기장·야구장·실내체육관·워밍업장·보조경기장 등이 있다.

1986년 9월 17일 전면적으로 증·개축됐으며, 주경기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이전까지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수원 블루윙즈의 홈구장으로 사용됐다. 현재 K리그 챌린지 수원FC의 홈구장이다.

야구장은 2015년부터 프로야구 10구단 KT Wiz의 홈구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3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주경기장과 2망명 규모의 야구장, 9천명이 수용 가능한 실내체육관 등을 갖추고 있어 국제대회 유치가 가능하며, 워밍업장은 실내체육 동호인들의 연습장소와 각종 행사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 새 수막거리

새 수막거리는 장안문 밖 옛 국도를 따라 수성중학교 입구에 이르는 거리로 ‘새로 술집이 들어선 거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조 19년(1795년) 화성직로발참(華城直路撥站)으로 길의 혁명이 일어나 임금 행차길이 지지대 고개를 넘어 옛 1번국도를 따라 장안문까지 이어지고 장안문 밖에 영화역과 장용영 외영의 훈련장이 들어서자 이 곳에 새로 술집이 들어서며 흥청거리게 됐다고 한다.

■ 장안문

 

 

 

장안문은 화성 4대문의 북쪽 문으로 정조 18년(1794년) 건축됐다.

중국역사에서 ‘장안’은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문자로 정조가 태평성대를 이뤘던 중국 한·당의 서울이던 장안의 영화를 화성에서 재현하기 위해 북문의 이름을 장안이라 하였다 한다.

팔달문과 함께 화성의 가장 대표적인 건조물로서 서울에서 내려오는 수원의 관문이며, 그 웅장하고 의장적인 모습은 오늘날 수원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규모와 구조는 팔달문과 거의 같으며, 서울의 숭례문(남대문)보다 더 크게 쌓은 것이 특징이다.

장안문의 외성으로 북옹성이 있는데 있는데, 옹성은 옹기를 반으로 쪼갠 폭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북수동 옛길

북수동의 옛길로써 북수동 209번지 왼쪽 사잇길로 해서 북수동성당과 소화초등학교 옆을 거쳐 종로 사거리까지 이어진 길이다. 지금은 골목길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정조대왕의 능행차길로서 현재 장안문과 팔달문 사이의 국도가 확장되기 전까지 주도로였다.

이곳은 한때 ‘관거리’라고 불렸는데 이는 조선시대 이후 관청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연로한 주민들에 따르면 일제시대에는 이곳에서 3·1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지금은 주택가와 큰 길로 변했다.

■ 팔달문시장

팔달문시장은 팔달문을 중심으로 자리한 9개 전통시장 중 팔달문에 가장 가까이 자리한 시장이다.

화성을 계획하면서 팔달문 일대에 시장을 열고자 한 정조는 수원부사(水原府使) 조심태(趙心泰)의 건의로 6만냥을 풀어 수원백성들이 장사를 하도록 도왔다.

또 정조의 뜻에 동조한 전국의 눈밝은 선비들이 하나 둘 팔달문으로 모여 들어 상인이 됐는데 이를 ‘유상’이라 부른다.

지난 2008년부터 ‘문화관광형 시장’ 사업을 진행해온 팔달문 시장은 술을 권하는 임금 형상의 ‘불취불귀’ 동상을 비롯해 왕의 길, 유상박물관, 유상학교 등이 마련돼 지역을 넘어 전국의 소비자들이 찾게 되는 시장으로 발돋움 하고 있다.

■ 팽나무고개 삼거리

매교다리를 건너 왼쪽 고개길은 과거 팽나무고개라고 불렸다. 보기 좋은 팽나무와 정자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인계동과 경계를 이루는 이곳은 현재 팽나무 대신 작은 나무가 서 있고, 그 앞에 팽나무고개에 대한 안내문만이 남아 있다.

 

■ 붉은 고개

세류1동주민센터 앞의 큰 길은 오래전에는 붉은고개라고 불렸다. 땅이 붉은 색을 띠고 있어 붉은고개라고 불렀는데 땅이 너무 질어서 장화없이는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때문에 이 곳에는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 벌터마을

벌터마을은 지금의 서둔동 일대에 있던 마을을 말한다. 논과 밭으로 이루어진 넓은 들판 사이에 마을이 형성돼 생긴 지명이다. 현재도 서둔동 사람들은 이 지역을 벌터라고 부른다.

■ 골말과 성황제

탑동에 있는 골말은 본래 형석면 곡촌이었다. 탑골의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원지역에서 현재까지 마을제사를 지내고 있는 흔치 않은 곳으로 우봉 이씨와 전주 이씨들이 가장 오래된 거주민들이며 그 외 손씨, 홍씨, 정씨 등이 살고 있다.

이 곳은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능행차 때 다니던 옛 길로 ‘왕대미’라는 지명도 전해지고 있다.

골말에는 성황당이 있는데 당집의 형태가 아니라 중앙의 향나무를 신목으로 삼고 그 주위를 크고 작은 나무가 둘러서 있는 형태로 마련돼 있다.

본래 신목은 600년 된 향나무였으나 1982년 경 도벌 당해 1993년 7월 1일(음력) 그 자리에 어린 향나무를 심고 비석을 세워 성황당과 성황제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한편, 성황당에는 옛날 정조가 능행길에 이 곳에 당도하자 갑자기 말의 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임금도 이 곳 만큼은 내려 걸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구운동 옛 이름 군돌, 군들

구운동의 옛 이름은 군돌이었다. 군돌에서 ‘돌’은 들의 뜻으로 그 음이 변해 ‘돌’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은 예전부터 논과 밭이 많아 들이 무리지어 있다는 뜻에서 군들이라 불렸다.

군들의 위쪽 마을은 윗군들 또는 공석이라 하고, 아래 쪽 마을은 아랫 군들 또는 하공석이라 불렀다.

전설에 따르면 머리 아홉 달린 용이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승천하였으므로, 마을 뒷산을 청룡졸산이라 하고 마을 이름을 ‘구운’이라 짓게 되었다고 한다.

■ 거북너머

거북너머는 천천동 301번지로 현재 도당집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옛날 이곳에 상당히 큰 돌거북이 있었는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실어가려다 때마침 해방이 돼 가져가지 못하고 부산에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거북너머는 돌거북이 있었다는 곳이 언덕처럼 돼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 황새들의 쉼터 황샛말

황샛말은 천천동 333번지 일대로 현재 아파트 단지가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주민들 간에 지명의 유래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는데 일부는 이곳에 황새가 많이 와서 쉬어갔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말하고 일부는 동네가 황새의 부리모양인 산 안에 있어 ‘황샛말’이라 불렀다고 한다.

어느 말이 옳은지는 알 수 없으나 주민들 모두 이 마을에 황새가 많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 밤밭, 율전동

밤밭은 율전동의 한글이름이다.

밤나무가 많아서 지어진 이름이다. 밤밭이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약 300여년전에 파주 염씨, 강릉 유씨, 인동 장씨 등 3성씨가 마을에 자리 잡은 후부터 밤나무가 많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 3성씨는 이곳에 자리 잡은 뒤 자손이 번성해 현재도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

■ 홀란이 묘

 

 

 

홀란이 묘는 현 영생고등학교 자리에 있던 묘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옛날에 한 기생이 있었는데 남자들이 자주 귀찮게 괴롭히고 혼란스럽게 해 죽었기 때문에 그 기생이 묻힌 묘를 홀란이 묘라고 불렀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는 기생의 이름이 ‘홀란이’였다는 것인데, 그 기생이 남자들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고 정신을 혼란스럽게 할 정도로 미인이어서 ‘혼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것이다.

‘혼란이’를 발음대로 부르다보니 ‘홀란이’가 됐다는 것.

그러나 홀란이 묘는 영생고등학교 개교 후 학교부지에 흡수돼 지금은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 말무덤

말무덤은 정자1동 588-8번지 일대 주택가를 말한다. 주민들에 따르면 옛날 임진왜란 때 어느 장군이 타고 가던 말이 죽자 그 말은 이곳에 묻었다 하여 말무덤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로 말이 묻혔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수원 인근에는 몇 군데나 말무덤이나 마총 또는 마하리 등의 말과 관련된 지명이 있는데 대부분 말이 아니라 ‘마을’, ‘집단’ 또는 ‘산’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말’임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연자방아가 있던 연쟁이들

연쟁이들은 정자1동 254번지 일대로서 연초 제조창 뒤편이다.

‘연정’이라고도 표기하는데 왜 연쟁이, 연정이라고 부르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근처에 물레방아가 있었고 그 곳을 물방아거리라고 불렀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있는데, 물레방아 근처에는 말이나 소가 끌어 돌림으로서 곡식을 찧는 연자방아가 있는 경우가 더러 있어 이곳에도 연자방앗간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 만석거(萬石渠)

만석거는 정조가 만든 신도시 화성의 생산 기반 시설이다.

1794년(정조 18) 정조는 흉년으로 곤궁한 백성의 생활을 염려해 해동기(解凍期)까지 성역의 중지를 선언하고 화성 인근에 대규모 저수지를 축조해 농지 개간을 구상했다.

1795년(정조 19) 2월 14일 원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던 정조는 장안문에서 화성유수 조심태로 부터 개간 가능한 넓은 땅으로 화성 밖 서북 지역을 보고 받아 만석거를 짓게 했으며, 정자동으로 흘러내리는 진목천(眞木川)의 물줄기를 막는 제언 공사를 시작으로 5월 18일에 완공했다.

만석거라고 명명된 것은 다음해인 1796년(정조 20) 1월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현재는 일왕 저수지, 조기정방죽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만석거는 만석 공원으로 개발되면서 현재는 원래의 ⅓가량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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