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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데 무슨 기술이 필요해…그냥 사는거지!

공연리뷰-늙어가는 기술
때밀이 아저씨·건물관리인·트레이너 등
11명의 일상사, 소소한 웃음으로 풀어내
2012 대한민국 연극대상 희곡상 수상작
도립극단 예술단 페스티벌 통해 선보여

 

극의 제목은 ‘늙어가는 기술’이다. 멋지게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이야기 혹은 멋지게 늙은 이들의 이야기를 연상 시킨다. 그런데 정작 포스터에는 “늙어가는데 기술이 있습니까?”라는 문구가 버젓이 걸렸다. 아이러니한 카피가 자못 도발적이다.

커튼 콜을 비롯한 공연의 모든 것이 끝날 무렵, 관객을 물론이거니와 배우들의 박수 갈채 속에는 병아리 한마리가 우뚝(?) 서있다.

경기도립극단이 지난 11일과 12일 예술단 페스티벌을 통해 선보인 브랜드 공연 ‘늙어가는 기술’의 이야기다.



지난 2012년 대한민국 연극대상에서 희곡상을 받으며 도립극단의 대표 브랜드 공연이 된 ‘늙어가는 기술’은 우리 주위 어딘가에 있을 법한 11명의 소시민의 이야기가 담겼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해 현순은 언제나 외롭다. 젊어서는 글도 제법 썼다는 그녀의 감수성은 비범한 수준이다.

사채업자인 그의 남편 찬봉은 우연히 만남을 가진, 알콜 중독에 남자같은 여자 태분에게 마음을 빼앗긴 상태다.

한편, 때밀이 순옥은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목욕탕을 인수하기 위해 찬봉에게 사채까지 끌어다 썼지만, 사랑한 여자는 때밀이인 그의 삶이 싫다며 그를 떠났다.

순옥의 단골이자 환갑이 넘은 건달 승갑은 꿈이 건달이었다. 그 꿈을 이뤄선지 그나마 이 군상들 중에는 가장 행복해 보인다.

반면 승갑의 아는 동생 춘기는 돈많은 노처녀 옥녀를 꼬셔 인생 역전을 노리고만 있다. 하지만 옥녀는 그에게 관심 조차 주지 않는다.

소녀같은 옥녀는 남자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이차를 관여치 않는 길섭이 열렬한 구애를 보내 오지만 받아 줄 수가 없다.

자유주의자이자 로멘티스트 길섭은 건물 관리인으로 일한다. “인생은 나그네, 갈림길이 나와도 어디로든 가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그저 승천하면 된다”고 그는 말한다.

길섭이 일하는 건물에는 파이터 창수와 트레이너 철동이 서로 다른 꿈을 꾸며 생활하고 있다. 경기에 패하고 돌아와 실랑이를 벌이던 그들은 한차례 이별한다.

집나간 남편때문에 알콜중독이 된 태분이 창수를 좇아 그 둘 사이에 끼어든다. 파이터를 좋아하고 술도 독한 것을 즐기는 그녀는 남자보다 더 남자같은 여자다.
 

 

 


그 사이 사채업자 찬봉에게 쫒기게 된 순옥은 하우스를 운영하는 무칠을 찾는다. 게이인 무칠은 화대를 빌미로 순옥과 관계를 갖지만 그런 삶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중이다.

작품은 한 인물을 조망하기 보다 모든 배우를 비슷한 비중으로 다룬다. 극이 시작되기 전 “전부를 보려고 하지 말고 마음에 내키는 것만 보시라”는 친절한 안내방송도 나온다.

이들 11명의 관계는 마치 ‘두다리, 세다리만 걸치면 대한민국 모두가 아는 사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얽혀있다.

그리고 이들이 주고 받는 대화 또한 때때로 중첩되는데 이는 다른 공간, 다른 상황에서 인물들이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기묘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렇듯 늙어가는 11명의 일상을 소소한 웃음으로 풀어내고 있는 연극에는 결국 ‘늙어가는 기술’에 대한 명료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다시, 커튼 콜을 비롯한 공연의 모든 것이 끝날 무렵, 관객을 물론이거니와 배우들의 박수 갈채 속에는 병아리 한마리가 서있다.

햇병아리 수준은 넘어서 사람으로 치자면 청소년쯤 될 법한 병아리 옆으로 볼록 솟은 무덤에는 현순이 묻어둔 닭 ‘보라매’가 잠들어 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부터 늙기 시작한다. 때문에 늙어가는데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을 지 모른다.

늙는 것은 육체적인 것이다. 정신은 ‘늙는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다만 늙어가면서 사람은 이런 저런 걱정거리가 머리에 쌓인다. 이 걱정거리들이 정신의 활력을 빼앗고 생각을 제한한다.

순옥의 말을 빌어 그것을 ‘정신적인 때’로 표현할 수 있겠다.

보라매가 뭍힌 땅에 우뚝 선 병아리가 모두의 박수를 받는다. “늙어가는 기술은 없다. 다만 젊게 사는 기술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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