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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이 넘은 배우들의 삶과 꿈…“인생 자체가 예술이다”

평균연령 70세 시니어 배우들로 구성
공무원·교육자 등 출신도 가지가지
가공되지 않은 어르신들의 이야기
연극과 현실 사이 경계서 감동 전해

 

중절모를 쓴 백발의 노신사가 바구니를 들고 나온다. 이 연극의 바람잡이다.

나이가 지긋하다 보니 제법 수위 있는 농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운다.

객석에 관객은 30명 남짓이지만 공연 내내 극장은 가족 같은 분위기로, 배우와 관객이 마치 한 식구처럼 울고 웃었다.

지난 19일 대학로 스타시티를 찾아 만난 공연은 평균 연령 70세의 시니어 배우들의 삶과 꿈이 무대를 수놓은 연극 ‘내 나이가 어때서’다.



바람잡이 역으로 나온 노신사가 배우 중 막내다. 올해 나이 68세다. 가장 연세가 많은 분이 올해 90세다.

옛 부터 연극인으로 살아온 분들도 아니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공무원, 교육자, 부동산업 출신의 사회 은퇴자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배우들이다.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은 연극지만, 뭔가 다른 느낌을 전해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결국 발을 잡아 끌었다.

바람잡이 노신사의 퇴장과 맞물려 연극은 어머니의 100세 생신날, 온 가족들이 모여 축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00세의 나이에도 생기 넘치는 어머니는 한 남정네가 처녀라며 같이 가자고 졸라대더라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건은 행상인이 “갈치가 천원” 하는 소리를 오해한 해프닝이다. 한번쯤 들었을 법한 꽁트다. 그러나 깔깔 웃는 배우들을 응원하며 박수로 화답하니 배우들과 격 없이 흥을 나누는 즐거움이 생겨난다.

배우를 꿈꾸던 막내딸의 이야기, 큰딸의 처지 한탄, 연애로 정신 없던 둘째딸의 과거사 등이 이어지는 전반부는 박수와 갈채로 화답하며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중반부는 분위기를 바꿔 인생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장남의 아내는 오랜 투병생활을 겪었다. 아내 병원비에 하루하루 힘들던 장남은 어느날 병원비 2천원이 모자라 울분이 쏟아졌다. 무작정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간 그에게 차 한대가 와 사고를 냈다. 수리비 명목으로 20만원을 건내고 자리를 떠난 운전자. 장남은 그게 그리도 고마웠단다.

이젠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며 장남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른다.

둘째아들은 아내가 집을 나갔다. 회사가 부도 직전에 몰리는 경영난을 겪었지만 처남은 벌써 몇 차례나 돈을 빌려가 갚지 않는다. 이를 나무라자 아내는 급기야 가출을 선택했다. 그러나 둘째는 곧 아내가 그립다. 결국 딸의 도움으로 화해한 두사람.

“꿈이 아니라 진짜라구요, 우리 아내가 가출했다 돌아왔어요”라며 아이처럼 기뻐하는 둘째의 모습이 연극과 현실의 경계에서 감동을 전한다.

아들들의 이야기는 묘한 현실감이 느껴진다. 전문 배우들이 전하는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감각이 힘을 싣는다.

배우이면서 일반인이고 어르신들인 그들의 삶 그대로를 전해듣는 느낌이 가슴을 뭉클하게 주무른다.

마지막에 나타난 막내아들이 무대의 분위기를 띄운다. 60세가 넘은 배우가 에스보드를 능숙하게 몰며 나타나니 박수가 절로 나온다.

지각을 나무라는 조카딸과 실랑이를 벌이며 서커스단장을 꿈꿨던 막내아들은 한바탕 묘기 행진을 펼친다.

그리고 장내가 정리되면 자식들은 어머니를 재혼 시키자며 신랑감으로 객석에 앉아 있던 90세 노배우를 무대로 올린다.

극은 두 사람의 리마인드 웨딩과 노래 ‘내 나이가 어때서’의 합창으로 막을 내린다.

완성도는 갖추고 있지만 비전문 배우인 만큼 종종 연기가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다. 화려한 소품이나 조명이 사용되지도 않았다. 가면과 인형, 천과 의자 그리고 몇 벌의 의상이 전부다.

그러나 전해 주는 감동은 대단하다. 무엇보다 연극에 대한 시각을 원점으로 돌리는 기회를 마련해 줬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이 진행중인 시대를 살고 있어서 시작과 함께 과정 속에 던져진다. 학업에 의미를 찾지 못하는 청소년들과 같다. 청소년들은 학업이 왜 필요한지 채 생각해 보기 전에 교육과정 속에 던져진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미디어의 발달과 대중문화의 확산으로 우리는 문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전에 문화의 시스템 속에 던져진다.

흔히 TV를 통해 접하는 것은 반드시 수렴해야 할 대중문화로 치부된다. 그런가 하면 연극, 뮤지컬 등 예술분야는 여유있는 사람들의 전유물 같아서 거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란 삶을 나누는 행위이고 예술이란 아름다움을 만드는데 목적을 둔 활동이다.

연극 ‘내 나이가 어때서’는 환갑을 넘긴 배우들이 그들의 삶을 나누는 문화였고, 그들이 시작하는 인생 2막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데 목적을 둔 예술활동이었다.

짙은 진정성이 마음을 감싸는 연극은 다음달 3일까지 이어진다. 일반인 2만원, 대학생 1만5천원, 청소년 및 60세 이상 어르신 1만2천원에 함께할 수 있다. 문의: 극단 그림연극(☎02-945-7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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