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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넘고 국경도 넘었지만 ‘편견의 벽’ 넘을 수 없었다

도문화의전당 10주년 기념 연극 ‘날숨의 시간’

 

경기도문화의전당 10주년 기념 연극으로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공연된 도립극단의 연극 ‘날숨의 시간’은 무대에 올리기도, 관람하기도 쉽지 않은 공연이었다. 연극 ‘날숨의 시간’은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넘어왔으나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고 다시 방황해야만 했던 한 자매의 이야기다.지난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로 공연 분위기는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미영·미선자매를 통해 북한이탈주민들의 아픔을 공감하고자 기획된 공연은, 누군가의 슬픔의 무게를 저울질 할 수 없음에 어려운 분위기에도 무대에 올려졌으리라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또 어느 한 부분에서는 그 것이 사회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는 간과되고 마는 현실에 대한 공통된 문제 의식도 안고 있었다.



남한으로 건너온 한 자매를 통해
사회의 무관심·편견에 고통받는
북한 이탈주민들의 아픔 보여줘


연극 제작에 앞서 한 달간
北 이탈주민과 인터뷰 진행
정통 사실주의 연극 표방
사회의 어두운 면 드러내

 

 


이날 1천200여석을 갖춘 도문화의전당 행복한 대극장에 마련된 객석의 수는 300석 남짓, 무대의 백스테이지에 임시로 마련된 객석이 관객을 맞았다. 배우들의 이동통로는 객석을 에워싸고 있었고 객석은 무대의 절반을 둥글게 감싸고 있어 배우와 관객의 거리는 한 층 가까워져 있었다.

무대 역시 투박하고 어지러워 보였다. 뒷편으로 피아노와 키보드가 자리하고 있었으나, 반주자인 미영의 역할, 그리고 동생이 사기를 당 한 후 슬픔을 표현하는 서글픈 연주를 위한 장치로 사용됐다.

크고, 작은 단이 어지럽게 놓인 무대에서 배우들은 약 30여분을 쉴 새없이 뛰어다녔다. 브로커를 통해 탈북하는 장면이다. 이미 공연장의 본 객석에서 부터 무대까지 뛰어 올라온 배우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숨소리는 가감없이 관객들에게 전해졌고, 힘에 부쳐 쓰러지는 모습은 연기가 아닌 실제가 돼 갔다.

별 다른 대사 없이 마임극으로 연출된 처음의 30분은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고, 배우들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짙어져 갈수록 무대는 어둡게 가라앉으며, 이탈주민들의 고난의 여정에 공감해 갔다.

힘겹게 남한에 도착하기 직전, 탈북자들이 서로의 꿈을 풀어놓는 동안 동생인 미선 역시 뮤지컬배우가 되겠다는 부푼 희망을 전한다. 언니 미영은 미선의 무대에 반주를 도우며 함께 돈을 벌어 아버지를 모셔오는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죽음을 넘어 국경이라는 선을 넘었지만, 그녀들은 또 다른, 넘어서지 못할 선 앞에 좌절해야 했다. 탈북자에 대한 편견의 시선은 미선의 출신 학벌을 이유로 오디션에서 번번히 실패하게 만든다. 결국 생계를 위해 언니와 작은 행사업체에 들어가지만, 월급은 남들의 절반 뿐이다. 병이 깊어가는 아버지를 모셔올 날은 그 만큼 뒤로 밀려간다. 그나마 힘든 삶 속에서 미영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함께 탈북한 오빠 명호의 따뜻한 위로 뿐이다.

 


그러나 브로커에게 독촉 전화가 온 날, 동생 미영이 대학 입학을 빌미로 한 사기로 모든 돈을 잃게 되고, 결국 자매는 유흥가로 몸을 던지게 된다. 사라진 미영을 유흥가에서 발견한 명호의 절규가 객석에 맴돈다. 업주와 마담의 의미심장한 대화가 오가고, 새터민이 된 동료들에게 돌아온 자매의 얼굴은 이제 옛 날의 모습이 아니다.

명호를 짝사랑하던 송화가 명호와의 임신과 결혼 소식을 공표하고, 아버지는 결국 병세가 악화돼 생을 달리한 지 오래, 오랜만에 회포를 풀자며 퇴장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단둘이 무대에 남은 자매의 애처로운 손인사가 객석으로 전해지며 극은 먹먹함과 함께 막을 내렸다.

지난 1월 한 달간 진행된 북한이탈주민들과의 인터뷰를 기초로 쓰여진 연극은 정통 사실주의 연극을 표방한 만큼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접적으로 표출한다. ‘탈북자’를 운운하며 던지는 대사들 속에는 날선 편견이 가감없이 담겨있었다.

무대의 구성에서 부터 소재의 성격까지, 연극 ‘날숨의 시간’은 쉽지 않은 공연이었다. 관객으로서도 종종 고개를 드는 불쾌함을 감내해야 했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공연장에서는 만나기 힘든 공연이기도 하다.

관객과의 호흡을 위해 본래의 객석을 포기하는 방식은 상업적인 성격의 공연과 공연장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때문에 도문화의전당과 도립극단의 이 연극에 대한 의지와 의미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불쾌함을 감내하면서도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극은 자신과 관련이 없다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우리의 태도를 질타하는 듯 했다.

무관심으로 인한 극속 새터민들의 슬픔이 TV를 통해 전해지는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슬픔으로 옮겨간다. 사회에서 분리 돼 버린 미영, 미선 자매의 마지막 시린 눈빛이 생에서 분리된 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무관심은 사랑의 반댓말이라고, 우리는 언제 쯤 슬픔을 겪기 전에 서로를 사랑하는 온전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공연장을 나오며, 많은 슬픔이 교차하는 밤을 맞았다.

/박국원기자 pkw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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