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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잃어버린 청춘과 꿈을 위하여

박범신 소설 ‘소금’ 뮤지컬로 각색
가출한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나선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 교차로 보여줘
아버지의 희생과 존재 의미 되새겨

 

인천시립극단 뮤지컬 ‘소금’

“아버지 행복하세요?” 큰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기엔 어색한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차례 숙고 했지만 입 밖으로 낼 수 있을지 좀 처럼 결심을 세울 수 없는 한 마디였다. 밤 11시 여느 때와 같이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TV앞에 누워 잠을 청하고 계시던 아버지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을 깨셨다. 겨우 들릴 듯한 작은 목소리로 슬쩍 이 한마디를 입 밖으로 내밀었다.아버지는 역시나 “그럼”이라고 짧게 대답하셨다. 지난 10일 두시간을 달려가 찾은 인천시립극단의 뮤지컬 ‘소금’을 보고 와서의 일이다.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인천시립극단이 선보인 공연 ‘소금’은 박범신 원작의 소설 ‘소금’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이다.

삶 속에서 가족의 그림자로, ‘돈 벌어다 주는 기계’로 살았던 ‘아버지의 가출’을 소재로 한 작품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는 아버지의 희생과 존재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아버지란 이름의 명패 뒤에 숨겨야 했던 그들의 청춘과 꿈의 이야기를 담았다.

염부들의 대파질에 맞춰 흐르는 곡 ‘소금’으로 활력을 담아 시작된 공연은, 어린 시절의 명우(아버지)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80리 길을 걸어 아낀 버스비로 두 여동생의 간식을 살 만큼 순수하고 마음씨 고운 명우는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에 고향을 찾는다. 그러나 아버지는 오히려 역정이다. 어린 명우가 손에 잡은 대파를 빼았으며 아버지는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고함이다.

온 몸을 받쳐 번 돈으로 아들의 출세를 바라는 아버지의 다 같은 마음이지만, 서운하기만 한 어린 명우는 야속한 아버지에게 쫒기듯 고향 서천을 떠나 강경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배롱나무 아래서 지쳐 잠이 든 어린 명우는 첫 사랑 세희누나를 만난다.

시간을 달리해 같은 장소에 명우의 딸 시우가 등장한다. 시우는 아버지의 노트에 적힌 기록을 따라 10년전 자취를 감춘 아버지의 행방을 찾고 있다. 그 곳에서 운명처럼 만난 남자 재경.

누군가의 남편, 그리고 아버지가 될 준비가 되지 못해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는 재경과의 만남은 시우가 아버지의 삶을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재경과 함께 아버지의 기록을 따르는 시우의 행선지 곳곳에서 시간을 달리한 아버지 명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공연은 아버지의 행보를 따르는 시우가 닿은 공간과 만난 사람들을 매개로 명우의 시간을 교차적으로 보여주며, 어린 시절 그리고 청년이 된 명우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자연스레 관객은 아버지에게도 아버지로서가 아닌 한 남자로서의 시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첫사랑인 세희누나와의 사랑이 있었고, 대학에서 만난 여인, 시우의 어머니와의 일로 세희누나와 헤어지게된 사연, 그리고 가출하기 직전 겪은 일들을 통해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는 반감에 사로잡혀있던 시우가 서서히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오프닝을 장식한 곡 ‘소금’과 함께, 시우가 재경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속 내를 털어 놓는 주점에서의 ‘치사해’, 서천의 주점에서 마을 사람들이 어우러져 부르는 ‘술아’ 등은 경쾌하면서 익살스런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져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그리고 서천에 내려와 아버지가 염전을 일구던 자리에서 아버지가 그렇게 말리던 염전일을 시작한 명우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르는 곡 ‘소금’은 같은듯 다른 감성을 자극한다.

한편, 서천에서 옛 꿈이던 노래하는 사람으로 사는 명우의 솔로곡 ‘시우’와 ‘떠나고 남은 건 햇빛 속에’ 등은 차분하면서도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멜로디를 전한다. 특히 청년 명우와 세희가 부르는 ‘노래와 바람’은 연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듀엣곡이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명우가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겪은 괴로움을 표현한 장면. 명우를 둘러쌓 세 딸과 아내가 그의 주변을 돌며 펼치는 장면은 시우의 두 언니의 아버지에 대한 막무가내 식 요구와 함께 막내 딸 시우마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를 ‘물주’ 처럼 대했던 모습이 그려지면서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 들었다.

다만 아버지 명우와 딸 시우의 이야기가 시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가운데 후반부, 명우가 가족을 떠나게 된 시점이 약간 혼동된다거나, 세희누나만을 사랑한 명우가 갑자기 다른 여자(시우의 어머니)에게 임신을 시켰다는 갑작스런 전개에 대한 설명이 다소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감성과 주제는 선을 잘 유지하면서 여러 관객의 눈물을 끌어내는 등 감동적인 공연을 선물해 줬다.

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아직도 아버지가 없는 삶은 좀처럼 상상되지 않는다. 그 만큼으로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닌 시절의 이야기 역시 상상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여성 복지를 통해 조금씩 위안을 찾아가는 어머니들과 달리, 정년을 넘기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간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요즘이다.

친구 같은 아버지가 대세처럼 자리잡아 가지만, 나의 아버지 세대에겐 조금은 먼 이야기. 그래서 더욱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우리 아버지의 꿈과 행복 이지만, 그것은 여전히 조심스런 한 남자의 이야기다.

/박국원기자 pkw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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