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배춘희(91)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진 성남시 야탑동 분당차병원 장례시장 7호실에는 8일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는 스님들의 목탁소리가 하루종일 울려퍼졌다.
배 할머니의 영정 앞에는 생전에 할머니가 그린 그림이 담긴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화보와 평소 할머니가 사용한 1천알 짜리 염주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날’의 기억을 화폭에 옮겨놓은 배 할머니의 그림은 영정 속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의 모습과 대조를 이뤄 조문객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1930년대 뜻하지 않게 정신대에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하게 된 배 할머니는 광복 후 1980년대가 돼서야 고국으로 돌아왔으나 오랜 시간 홀로 살았다.
1997년이 되어서야 광주 나눔의 집에 들어와 같은 아픔을 지닌 할머니들과 함께 생활하게 됐다.
박재홍 나눔의 집 과장은 “그나마 하나뿐인 오빠도 오래전 세상을 떠나 혈혈단신 혼자 남았던 것으로 안다”며 “최근 3∼4년 동안 매년 나눔의 집에 계시던 할머니들을 한분씩 떠나보내면서 당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되내이셨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생전 불교에 귀의하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았다’는 배 할머니의 뜻을 따르기 위해 불교식으로 장례가 진행된다. 배 할머니는 정부 지원금을 틈틈이 모아 3천만원이라는 큰돈을 김포시 중앙승가대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았을 정도로 ‘불심’이 남달랐다.
13년을 함께 생활해온 이옥선(87) 할머니는 헌화와 분향 뒤 “좋은 곳으로 보내달라고 기도했다”며 “조선 민요나 일본 엔카를 자주 부르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떠올렸다.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각계의 추모가 이어져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김문수 경기도지사, 조태용 외교부 1차관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기렸고, 온라인에도 추모 물결이 계속됐다.
배 할머니의 발인은 10일 오전 7시 30분에 치러진다. 나눔의 집에서 노제를 한 뒤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할 예정이다. 고인의 유골은 합천 해인사에 모셔진다.
/성남=노권영기자 r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