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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내 오월 꿈 산부인과 병원장

 

-생명 경시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새로운 생명을 가장 먼저 만나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이 시대를 논한다면.

당직 근무를 하고 난 후 피곤하고 힘들 때 신생아실을 한 번씩 들러 신생아 바구니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면 느껴진다. 잉크물이 담겨 있는 물 컵이 투명하게 바뀌는 현상 같은 건데 마음이 편안해지고 얼굴의 근육이 풀어지면서 어느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생명이란 건 그런 거다. 그 가치를 계측화 하려는 것이 무의미한 그런 고귀함이 있다. 간혹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됐다며 상담을 해오는 젊은 부부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계측이 가능한 삶의 이런저런 이유를 늘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원하지 않고 만들어진 생명이라는 것은 없다. 점점 설득의 힘이 약해진다는 것은 세상이 그만큼 생명보다도 부나 생활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그래도 아직은 많은 산모들이 다음 진료 때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는 것을 보면 희망을 가져도 될 것으로 보인다.



- 다른 전공의들과 다른 가치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학생 때부터 정형외과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인턴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했는데 온통 다치고 삐고 하는 군인들을 봐서 그런지 갑자기 하기가 싫어졌다. 그때 정형외과를 오랫동안 하던 선배께서 회고를 하는데 매일 다치고 부러지고 싸우는 환자들만 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회의가 느껴진다고. 의사도 사람인데. 그래서 산부인과를 한다면 매일 새로운 생명들이 탄생하는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산모들이 고통스럽더라도 모두 행복한 결과로 맺어지니까 평생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매일 그런 광경을 함께 하는 것이 산부인과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들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문의 취득 후에는 미즈메디병원에서 부인과 골반 내시경을 배워서 지금 부인과 수술을 주로 하는데도 출산이 주는 그 감동의 힘은 놓칠 수 없어 산모들을 계속 진료하게 되는 것 같다.



- 산부인과 의사로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본다면.

산부인과가 저출산으로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하는데 미안하게도 제게는 많은 기회가 주어졌던 것 같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할 수 있었고, 미즈메디병원에서 골반 내시경 수술을 배울 기회도 주어졌고, 수원에서는 2005년 개원해 수원에서 두 번째로 많은 산모들이 출산하는 병원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지금도 진료를 위해 저를 찾는 분이 있다는 것이 최고의 훈장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십년 가까이 저와 함께 진료를 도와주는 직원들이 있어 항상 기쁘다.



 

 

 

- 병원이 주는 느낌이 남다르다. 일반적인 산부인과와 다른 인문학적 분위기가 묻어나는데 본인의 아이디어인가? 그렇다면 배경은.

칠년 정도 운영하던 병원을 그만두고 새로운 병원을 시작하려는데 정말 많이 어려웠다. 그때 포기하려고 몇 번이고 변명거리를 찾아다녔다. 사실 가장 어려웠던 것이 내 자신을 설득시킬만한 적당한 핑계 거리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때 우연한 기회에 (R=VD. 생생하게 꿈꾸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글귀를 접하게 됐다. 그때부터 정말 병원을 하려고 하는 지금 병원자리를 맴돌며 꿈꾸기 시작했다.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려고 했던 그 어려운 문제들이 순식간에 해결되고 어느 날 병원 기공식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됐다. 그때부터 꿈의 전도사 역할을 하게 됐다. 그래서 병원이름에 꿈이라는 글자를 넣었다.

저희 병원에는 다섯 가지 꿈이 있는데, 병원의 비전 같은 것이다. 그 중에 세 번째 꿈은 모든 여성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꿈이다. 많은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 등으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살아가는데 물론 좋은 육아도 여성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것이냐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어서 선택한 것이냐는 엄연히 다르다. 병원이 단순히 진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꿈을 일깨워주는 역할도 같이 할 수 있다고 본다. 병원 진료대기실에는 자신의 꿈을 적어두는 소망나무를 만들어 모든 환자들이 꿈을 한번 적어보도록, 그래서 그 꿈을 잊지 말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두 달에 한 번씩 산모들을 대상으로 꿈에 대한 강의와 자신의 꿈을 적고 공유하는 드림파티 같은 것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감동이 있다. 그리고 출산하는 모든 신생아들이 (꿈이 이루어지다)라고 적힌 배냇저고리를 입고 퇴원한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꿈을 키우며 살아갈 것이라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저희 병원에서 출산하는 새 생명의 이름으로 유니세프에 일정기금을 기부하고 있는데 꿈 중에서 가장 고귀한 꿈이 나누는 꿈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 대학시절 이미 수상경력이 있는 시인으로 알고 있다. 문학은 어떤 의미인가.

고등학교 시절에 시인이 되고 싶어 문과를 선택하려고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만류해 이과를 선택했다. 그때 선생님 말씀이 “국문학과 나와서 시를 쓰는 것이 더 멋있어 보이냐, 의사가 시를 쓰는 것이 더 멋있어 보이냐”라고 하셨다. 물론 멋있게 보이려고 시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습작을 해오고 있다. 선친께서도 시골에서 한약방을 하셨는데 항상 한시를 쓰셨다. 아마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의사라는 직업이 생활에 주는 무게를 가볍게 해줄 순 있어도 삶이 주는 무게를 덜어줄 수는 없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권하지 않았다’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무겁고 절망으로 꿈틀대는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영혼을 배불리는 데는 그래도 시를 읽고 쓰는 것만큼 더한 것이 없다고 본다. 아직은 좋은 의사가 못돼 사명감만으로는 영혼이 가난하다.



- 예비 임산부와 여성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월 꿈 산부인과에서 시행하고 있는 분만방법은 드림분만이라는 건데, 이런 방법을 동원하게 된 이유는 많은 산모들이 여러 분만법에 현혹돼 고민하는 것이 안타까워서다. 실제 최근 10여년을 보면 그네분만, 수중분만, 그리고 최근의 자연주의출산까지 많은 분만법들이 산모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이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산모들이 그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여볼까 하는 바람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실제 그 효과는 검증되지 않고 사장되고 말았고, 여전히 제왕절개수술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물론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저희 병원에서 시행하는 드림분만으로 산모들의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고 자연분만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약간의 이완훈련만으로도 고통 없이 자연분만을 할 수 있었다. 산모들께서 여러 분만방법에 현혹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성의 몸은 그 출산을 감당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평생 자궁은 그 일 하나만을 위해 존재한다.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자연 분만에서 가장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다. 그리고 최근 후성유전학이 발전하면서 태아 시기의 영양과 자극이 태어나서 평생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신 전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임신 중에도 적절한 영양 상태를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줄여나가는 것이 나중에 태어나는 아기의 평생 건강과 똑똑한 아이로 자라게 하는 길임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글│전승표 기자 sp4356@kgnews.co.kr

사진│오승현 기자 osh@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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