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0 (토)

  • 흐림동두천 24.3℃
  • 맑음강릉 28.3℃
  • 흐림서울 25.2℃
  • 구름많음대전 22.8℃
  • 구름조금대구 24.4℃
  • 구름많음울산 22.8℃
  • 구름많음광주 23.5℃
  • 흐림부산 25.3℃
  • 구름많음고창 24.8℃
  • 흐림제주 27.2℃
  • 흐림강화 24.4℃
  • 구름조금보은 22.4℃
  • 구름많음금산 21.8℃
  • 흐림강진군 23.6℃
  • 맑음경주시 22.3℃
  • 구름많음거제 24.3℃
기상청 제공

“고조선, 만들어진 신화 아니다”

 

중국의 문헌 등에 숨겨진
고조선의 비 자료 발굴
잃어버린 고조선史 찾아내


저자, 우리가 알고 있던
대동강 중심의 조선은
실재의 절반이라고 주장

 

 


역사는 사료가 생명이다. 사료의 뒷받침이 없는 역사 서술은 소설에 불과하다. 상고사 역시 마찬가지다.

‘삼국유사’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남아 있는 사료로서는 고조선을 다룬 가장 오래된, 그리고 현재로는 유일한 사료다. 그러나 한 페이지에도 못 미치는 고조선 기록은 그 내용이 너무나 빈약하다.

현재 한국에서 고조선은 만들어진 신화라는 설이 주류학설이고, 또 고조선이 대동강 유역에서 출발했다는 대동강 낙랑설이 학계의 정설이다.

이 책은 ‘삼국유사’보다 연대가 앞선 중국의 문헌과 1500년 전 세워진 선비족 모용은의 비문 등에서 숨겨진 고조선의 비(秘)자료를 찾아내,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요서 지역에 ‘요서조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문헌과 금석문으로 증명하고 있다.

사고전서에서 찾아낸 고조선 사료들은 중국 송나라시대 이전의 것들로서 시기적으로 모두 김부식과 일연의 삼국사기, 삼국유사보다 앞선다. 특히 북주시대에 유신(庾信)이 쓴 신도비문은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의 금석문으로 그 사료적 가치는 광개토대왕 비문에 견줄만 하다.

저자가 사고전서를 통해 잃어버린 고조선사를 되찾았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첫째, 송나라 때 편찬된 ‘무경총요’와 ‘왕기공행정록’에서 오늘날 하북성 동쪽에 있는 ‘조하(潮河)’가 송나라시대에는 ‘조선하(朝鮮河)’로 불렸다는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송나라 사람 ‘나필(羅泌)’이 쓴 ‘노사(路史)’에서 ‘산해경’에 포함돼 있는 ‘해내경’이 ‘고조선사기(古朝鮮史記)’라고 말한 기록을 찾아냈으며, 셋째로는 송나라 사람 ‘낙사(樂史)’의 ‘태평환우기’에서 오늘날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에 ‘조선성(朝鮮城)’이 있었다는 기록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넷째로는 중국 최초의 정사인 ‘진서(晉書)’에서 전연(前燕)을 건국한 선비족 모용황을 ‘조선공(朝鮮公)’에 봉했던 기록이 발견됐으며, 마지막 근거로는 1천500년 전 남북조시대의 대표적인 문인이었던 유신(庾信)이 쓴 ‘두로영은(豆盧永恩)’의 비문에서 선비족의 발상지 시라무렌강 유역에서 고조선이 건국됐다고 기록한 내용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고전서의 ‘조선하’, ‘조선기’, ‘조선성’, ‘조선공’, ‘조선국’ 등에 관한 기록들은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일연의 ‘삼국유사’는 물론 그 이후 단재 신채호, 위당 정인보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인용한 적이 없는 모두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자료들이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그간 우리에게 알려진 대동강 중심의 조선이 절반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전하는 ‘요서조선’의 사료로 온전한 고조선을 되찾길 바라고 있다.

아직 한국사와 관련해 국내외에서 한 번도 인용된 적이 없는 이같은 새로운 사료를 원문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책은 충분한 가치를 증명한다.

/박국원기자 pkw09@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