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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烈女門 앞에서

烈女門 앞에서

/강계순

만고풍사에 삭아내린

고행과 미덕

빛 바랜 돌이 되어

서서히 죽어가고

지독한 사랑 하나

외롭게 웅크린 채

길목을 지키고 있다



가장 높은 것은

가장 비천한 것과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장 어리석은 것과

오랜 세월 서로

몸 비비면서 살고



비바람은 그들 모두를

함께 적시며

털어내고 있다



작은 추억 하나

극히 드문 소리 울리며

허공을 떠돌고 있다.





 

 

 

비록 비바람 속에 팽개쳐져 있는 작은 돌일지라도 그 속에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지나가는 어떤 것, 지울 수 없는 추억이 지독히 강하게 각인된 채로 오랜 세월을 견디어낼 것이다. 한 시대를 살다간 측은하고 아름다운 여자의 생애를 이 시를 통해 돌아보게 된다. 몸 낮추고 자신의 생명을 타인에게 주었던 열녀의 지독한 어리석음과 아름다움 또한 이와 같지 않겠는가. 살아가면서 가장 존귀한 것은 무엇이며 가장 비천한 것은 무엇인가 불확실한 추억으로만 몇 세상을 떠돌고 있다.

영원한 것은 없고, 삶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는 사랑조차도 육신의 소멸과 함께 삭아서 없어져 버리는 것, 남는 것은 기록에 의존하면서 추억의 빛바랜 사진뿐이다. 몇 사람의 가슴에 각인되는 일이란 게 어디 쉬운가? 온 생애를 매달려 가치 있다고 믿고 추구하고 있는 것 모두가 허무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박병두 시인·수원영화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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