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맨드라미를 위하여
/이승희
죽고 싶어 환장했던 날들
그래 있었지
죽고 난 후엔 더 이상 읽을 시가 없어 쓸쓸해지도록
지상의 시들을 다 일고 싶었지만
읽기도 전에 다시 쓰여지는 시들이라니
시들했다
살아서는 다시 갈 수 없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고
내가 목매달지 못한 구름이
붉은 맨드라미를 안고 울었던가 그 여름
세상 어떤 아름다운 문장도
살고 싶지 않다로만 읽히던 때
그래 있었지
오전과 오후의 거리란 게
딱 이승과 저승의 거리와 같다고
중얼중얼
폐인처럼
저녁이 오기도 전에
그날도 오후 두시는 딱 죽기 좋은 시간이었고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울어 보았다
- 이승희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문학동네 2012. 2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거리며 웃음을 터뜨리기만 할 나이 즈음, 청년기의 문 앞에 서기 전 즈음이면 앓았던 열병이다. 누구나 지나온 시간이지만 그 자리를 벗어나면 그들의 존재에 대한 갈망과 고민을 속 깊이 봐 주는 이가 없다. 읽혀지기도 전에 다시 쓰여지는 시들이라니, 얼마나 시들한 일인지. /이명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