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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잠든 곳으로 유명 무기·전쟁역사 고스란히 보존

테마여행가가 들려주는 프랑스
⑥ 앵발리드(Invalides)

 

루이14세 때 상이용사 재활원 건립
웅장한 건물·황금색 돔 화려함 반영
대혁명 당시 시민들 무기고 탈취
1840년 나폴레옹 1세 유해 안치


현재 전쟁·군사박물관으로 사용
시민들 휴식처인 정원엔 대포 전시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과 반짝이는 황금색 돔에 나폴레옹의 유해를 전시하는 곳으로 유명한 앵발리드.

루이 14세 시절, 30년 동안의 긴 전쟁으로 발생한 상이용사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며 절도와 강도 짓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파리에서도 시민들과 자주 충돌을 일으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다.

마침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던 루이 14세는 왕실의 안녕과 이익을 위해 싸운 상이용사들이 남은 여생을 편안히 살아갈 수 있도록 왕실이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성이 있었다.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1671년 건축가 ‘리베랄 브뤼앙(Liberal Bruant)’이 공사를 시작해 1676년 4천명의 상이용사를 수용한 재활원으로 완공된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인 1789년 7월 13일, 파리시내 곳곳에 바리케이트가 세워지고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무기를 구하게 된다.

당시 재활원 관리를 맡았던 송브뢰이 원장은 무기를 쓸모 없게 만들려고 화승총의 뇌관제거 작업을 상이용사들에게 명령하지만, 이미 혁명의 분위기에 젖은 상이용사들이 작업을 느리게 했다.

다음날인 14일, 흥분한 시민들이 앵발리드의 무기고를 탈취해 3만2천정의 소총과 26문의 대포를 탈취해 바스티유 감옥으로 향해 혁명의 불꽃이 붙게 된다.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원정에서 부상당한 상이용사들을 자주 찾아와 희망과 용기를 주면서 확실한 자신의 지지자로 만들었고, 나폴레옹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훈장 레지옹 도뇌흐 수여식을 1804년 7월 15일 처음으로 성대하게 이곳에서 치른다.

현재, 일부는 병동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선사시대부터 부르봉 가문의 왕조 시대, 나폴레옹 시대 뿐 아니라 제1, 2차 세계대전까지의 전쟁 역사와 무기들을 보존하고 있다.

 

 

 



◇정원

‘로베르 드 꼬뜨(Robert de Cotte)’에 의해 설계된 길이 500m, 폭 250m의 잔디밭은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을 받고 있다.

앵발리드의 정원에는 17, 18세기의 ‘승리의 대포’로 불리는 청동 대포들이 있으며, 이들 대포들은 1차 세계대전의 휴전 협정 기념일에 축포를 울린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로 옮겨지기도 했지만, 1946년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명예의 뜰

169m 길이의 웅장한 정면 건물의 현관을 통과해 ‘명예의 뜰’로 들어서면 사각형의 넓은 뜰 가장자리로 15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까지의 대포가 전시돼 있고, 나폴레옹 1세의 청동 동상이 방문객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전쟁박물관

오른쪽 건물에는 앙리 4세 시절, 프랑스와 1세 시절의 중세 갑옷과 기사들의 복장, 칼, 창과 초창기의 화승총이 보존돼 있고 진열실 끝의 아시아 관에는 몽고나 일본의 사무라이 복장도 있다.

1, 2차 세계대전실에는 당시에 군용으로 사용되던 물품들도 있고, 전쟁 상황을 비디오나 영화를 통해 실감나게 종군 기자처럼 볼 수 있다.

 

 

 



◇군사박물관

왼쪽 건물에는 루이 14~16세 시대의 군대 복장 및 왕들이 사용하던 방패나 복장이 진열돼 있다.

또 나폴레옹 시절의 근대적인 군대 모습뿐 아니라 나폴레옹 1세가 쓰던 모자, 입었던 외투, 침실, 생 뗄렌느(Sainte Helene) 섬에서의 유배 생활 모습, 박제된 나폴레옹의 애마와 애견을 볼 수 있다.

루이 14세 시절, 스페인과의 영토 전쟁 및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성 건축가 보방(Vauban)장군의 건의로 제작한 프랑스 전역의 수비 성곽과 요새들의 대형 모델도 전시돼 있다.

 

 

 



◇생 루이 성당(Eglise de Saint Louis)

맞은편의 생 루이 성당은 병사들의 성당으로, 건축가 ‘망사르(Mansart)’에 의해 설계됐다. 1814년까지 탈취한 외국 군대의 휘장을 보관하고 있다가 유럽 동맹군의 파리 진입 때 1천500여 개의 휘장을 불태운다. 성당 지하에는 많은 장군들의 무덤이 있다.

 

 

 



◇돔

건축가 쥘 망사르에 의해 절충주의 양식으로 건설돼 당시의 화려함과 루이 14세의 영화를 보여준다. 층층이 놓여진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기둥들은 장식적인 요소로 사용됐고, 돔 지붕은 1715년부터 도금을 하기 시작했다.

아래 층의 열주 사이에는 프랑스에 카톨릭을 전파하는 것에 공헌한 생 루이(Saint Louis) 왕의 석상과 유럽 최초의 대제인 샤를르마뉴(Charlemagne)의 모습이 보이고, 그 위층에는 선행을 상징하는 조각이 있다.

벽 쪽에는 나폴레옹 1세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Joseph Bonaparte), 동생인 제롬 보나파르트(Jerome Bonaparte), 루이 14세 시절에 국경 수비를 위해 요새를 건설한 보방 장군, 1800년 처음으로 돔 성당에 유해가 안치된 뛰렌(Turenne) 장군 등의 유해가 들어있는 6개의 관이 있다.

내부의 천장 그림에는 예수와 12사도에게 검을 바치는 생 루이 왕이 묘사돼 있으며, 중앙 부분의 난간에서 아래로 보면 비스꽁티(Bisconti) 의 작품인 화려한 핀란드 산 붉은색의 대리석 석관이 보인다.

1815년 6월 18일 워털루(Waterloo) 전투에서 패하고 생 뗄렌느 섬으로 유배돼 1821년 52세의 나이로 눈을 감은 나폴레옹 1세의 유해는 프랑스의 마지막 왕인 루이 필립(Louis Philip)이 영국과의 끈질긴 8년 간의 협상 끝에 1840년 12월 개선문을 지나 샹젤리제 거리에서 환영을 받으며 ‘돔 성당’에 안치된다.

1811년 나폴레옹과 두 번째 부인 오스트리아 황녀 마리 루이즈 사이에서 태어난 황세자 ‘애글롱(Aiglon)’은 나폴레옹 유배지로 가지 못하고 외가인 오스트리아 궁정에서 자란다.

1832년 21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나폴레옹의 아들 유해가 1940년부터 아버지의 옆에 안장된 것을 볼 수 있다. 나폴레옹을 멘토로 사모하던 히틀러가 파리로 진격하면서 부자 상봉을 시켜줬다.

 



 

 

 

>>테마여행가 안완기는…

한국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1992년 프랑스로 건너가 유럽의 건축을 공부했으며, 특히 프랑스의 풍부한 문화와 역사에 빠져 들게 됐다. 그는 이 나라의 문화에 대해 감상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서는 수 많은 여행객들을 보면서 프랑스를 제대로 느끼고 배우는 정직하고도 건강한 여행문화를 꿈꿨다. 지난 2003년부터 프랑스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홈페이지(www.algogaza.com)를 제작, 운영해 유용한 프랑스 여행관련 정보 및 자료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



<약력>

- 1986년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 1992년 프랑스 유학

- 1995년 Strasbourg 건축학교 수학

- 1998년 Val-de-Marne Paris 건축학교 수학

- 2002년 프랑스 테마여행 전문 가이드

- 2006년 ‘알고가자 프랑스’ 테마여행사 운영

- 2014년 ㈜OECD 대표부 대외협력부 근무

- 2014년 9월~ ‘알고가자’ VIP여행사 창업

/정리=김장선기자 kjs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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