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奧地)
/조수옥
산 첩첩 눈 끝을 향해 달려오는 산맥 허리마다
누군가 휘갈긴 비백飛白 사이로
뾰족 내민 산의 이마에 적막이 깊다
내 등뼈를 타고 몰아치던 그해 겨울
눈보라 비칠거리는 능선 한가운데서
적설은 내 허벅지까지 친친 붕대를 감아댔다
흔적은 흔적을 지우고
그 아스라한 경계에서
나는 산이었다가 나무였다가 아무것도 아니었다가
사방은 온통 눈 첩첩
거대한 북극곰들이 으르렁거리며 진을 치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더는 갈 수 없는 내 몸의 오지 등뼈
그 골짜기 거제수나무 껍질에서 저문 바람소리가 들렸다
웅성거리는 곳에 귀 기울이면 사무치는 것은
그대를 향해 뛰어가는 발자국만은 아니었다
다만 그곳에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을
그대의 거처가 궁금했으므로
아직 봉인되지 않은 그리움이 겨울을 나고 있으리
외진 바람으로
- 조수옥 시집 ‘오지’ 도서출판b
산 첩첩 눈 끝을 향해 달려오는 산맥 허리마다 누군가 휘갈긴 비백飛白의 말씀은 변방의 말씀이다. 그래서 적막하며 더는 갈 수 없는 오지 등뼈 그 골짜기 거제수나무 껍질에서 저문 바람소리가 들린다. 이 말씀은 적막의 말씀이며 난분분 흩날리는 눈 속에서도 사무치게 그리운 삶의 맥박소리가 되어 들려오기도 한다. 세상 가장 깊은 곳 스스로의 등뼈를 만져 본 사람만이 산이었다가 나무였다가 아무것도 아닌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지는 스스로를 봉인하지 않는 충분히 열려있는 경지이다. 그 적막 깊은 이마를 느껴보고 싶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