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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드 메디치 왕비의 궁전이 릴케·보들레르의 詩想 산책 명소로…

테마여행가가 들려주는 프랑스
⑧ 룩상부르그 정원 (Jardin du Luxembourg)

 

앙리 4세 암살당하자 루브르궁전 떠나
1615년 룩상부르그城 사들여 개축 거주
거장 화가 루벤스 초청 24점 그림 장식
아들과 권력암투 5년만에 獨유배 사망


1635년 완공후 정원 일부 일반인 공개
1793년 대혁명 당시 정치범 감옥 이용돼
나폴레옹 3세 결혼식 축하 무도회 열어
2차세계대전 독일군 사령부 본부로 사용


1801년 메디치 분수 낀 광대한 정원 완성
문인·예술가 동상 즐비 조각박물관 수준
1886년 바르똘디 제작 자유의 여신상도




룩상부르그 정원은 파리에서 가장 아늑한 시민공원으로, 철마다 색다른 다양한 모습으로 파리 시민은 물론 관광객들을 사로잡는다.

이 공원은 꽃이 피는 시기와 종류를 고려해 지속적으로 꽃을 볼 수 있도록 관리한다. ‘릴케(Rilke)’, ‘보들레르(Beaudelaire)’의 산책 장소였으며, 도심 속의 오아시스를 연상시키는 차분하고 여유 있는 공간으로 관광객이 아닌 파리 시민들을 만날 수 있다.

 



◇역사

현재 프랑스 상원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룩상부르그 궁전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앙리 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치(Marie de Medicis)’에 의해서다.

중세를 거쳐 근세에 이르는 유럽의 역사를 볼 때 자주 언급되는 ‘메디치’ 가문 출신인 마리 드 메디치는 당시 왕궁으로 쓰이던 루브르 궁전에서의 생활에 즐거움을 찾지 못했고, 1612년 앙리 4세가 암살당하자 루브르 궁전을 떠나기로 작정한다.

1615년 ‘프랑소와 드 룩상부르그(Francois de Luxembourg)’의 성과 그 주변을 사들인 왕비는 건축가 ‘클레망(Clement)’을 시켜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플로렌스의 ‘피띠(Pitti)’ 궁전을 본 따서 성을 개축하도록 했다.

1625년 아직 성을 완공하지 않은 상태에 이곳에 입주한 왕비는 당대의 거장 ‘루벤스(Rubens)’를 초청, 생애 중요한 일화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부탁,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24점의 그림이 성안을 장식했다.

‘룩상부르그 궁’에 애착을 가지고 만년이나마 고향의 분위기를 느껴보려 했던 왕비는 5년만에 아들 ‘루이 13세’와의 권력 암투에서 밀려 독일의 쾰른으로 유배를 가고 그 곳에서 사망한다.

룩상부르그 궁은 왕비 마리 드 메디치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후인 1635년에 건축가 ‘쟈크 르메르시에(Jacques Lemercier)’에 의해 완공된다.

왕비가 사망하자, 성의 정원을 부분적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했고, 시민들 사이에 산책 및 연애, 사색의 장소로 커다란 인기를 누리게 된다. 루이 13세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 가스통(Gaston d’Orleans)’과 그의 딸이 성의 소유주가 됐고, 대혁명 때까지 왕실 가족과 귀족들이 소유했다.

1793년부터는 혁명 정부가 대 숙청 작업을 진행하면서 수많은 정치범들을 수용하기 위한 감옥으로 사용됐고, 대혁명이 끝나가는 1795년에는 집정관 정부의 제1 집정관이었던 ‘나폴레옹 1세’가 자신의 거처로 사용하다가 1800년 ‘뛸르리(Tuileries)’ 궁전으로 옮긴 후부터 상원 건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7월 왕정 때는 317명의 상원 의원들이 동시에 회의할 수 있는 거대한 회의실이 마련됐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제2 제정이 들어서자 룩상부르그 궁에는 거대하고 화려한 로비가 만들어지게 된다.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듯한 이곳에서 황제 자신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대 무도회가 벌어지기도 했다.

또 룩상부르그 궁은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군 사령관이 집무를 보는 본부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파리 탈환 전투시에는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정원과 연못, 조각

1801년에는 ‘샬그랭(Chalgrin)’에 의해 ‘옵세르바투와르(Observatoire) 분수’까지 이르는 광대한 정원이 완성됐다. 부분 부분으로 나눠진 잔디밭들은 아침, 정오, 오후, 밤 등의 하루의 시간대를 상징한다.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낸 조각가 ‘까르뽀(Carpeaux)’의 작품인 옵세르바투와르 분수는 세계의 4대륙을 상징하는 것으로 제 5대륙은 빠져 있다.

룩상부르그 궁이 지어질 당시에는 이탈리아 양식 분수와 동굴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없어졌다.

화려했던 옛날을 기념하기 위해 1861년 ‘살로몬 드 라 브로스(Salomon de la Brosse)’에 의해 ‘메디치 분수’가 완성된다. 마리 드 메디치의 이름을 딴 이 분수 주변의 사색적인 분위기에는 흑백 사진이 잘 어울린다.

여름철 더운 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이곳으로 몰려와서 독서를 하거나 관광객들은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

궁전 앞 부분의 연못 주변에는 프랑스 왕비들, 유명한 여인상들이 줄지어 서 있으며, 공원 곳곳에는 문인들, 예술가들의 동상이 있어 19세기 조각의 야외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 유명한 것으로 꼽히는 것이 ‘들라크르와’의 동상이다. ‘달루(Dalou)’의 작품인 이 동상 밑에는 들라크르와 자신의 작품인 ‘예술, 시간, 영광’이라는 조각 작품이 놓여있다.

또 ‘죠르즈 상드(Georges Sand)’,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모파상(Guy de Maupassant)’, ‘스땅달(Stendhal)’ 등 유명인들의 조각상을 볼 수 있다.

18세기부터 산책 코스로 각광 받는 이 공원에서는 독서, 운동, 놀이, 연극극장뿐 아니라 양봉 학교도 있어 수십 개의 벌통을 볼 수 있으며, 가을철이면 진짜 꿀을 팔기도 한다. 시중 가격에 비해 두 배 정도로 비싸다.

사람들이 나무 아래 그늘에서 쉬면서 꽃을 감상하거나 아이들이 보트를 빌려서 연못에서 놀고, 프랑스의 전통 쇠구슬 놀이인 ‘빼땅끄’를 하기도 하고, 기를 수련하는 사람들도 있다.

1886년 조각가 ‘바르똘디(Barholdi)’가 만든 오리지널 ‘자유의 여신’상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으며, 바로 옆에는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쌍둥이 빌딩 테러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나무가 심어져 있다. 현재의 여신상은 가짜로, 오리지널 여신상은 2011년부터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테마여행가 안완기는…

한국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1992년 프랑스로 건너가 유럽의 건축을 공부했으며, 특히 프랑스의 풍부한 문화와 역사에 빠져 들게 됐다. 그는 이 나라의 문화에 대해 감상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서는 수많은 여행객들을 보면서 프랑스를 제대로 느끼고 배우는 정직하고도 건강한 여행문화를 꿈꿨다. 지난 2003년부터 프랑스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홈페이지(www.algogaza.com)를 제작, 운영해 유용한 프랑스 여행관련 정보 및 자료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

<약력>

- 1986년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 1992년 프랑스 유학

- 1995년 Strasbourg 건축학교 수학

- 1998년 Val-de-Marne Paris 건축학교 수학

- 2002년 프랑스 테마여행 전문 가이드

- 2006년 ‘알고가자 프랑스’ 테마여행사 운영

- 2014년 ㈜OECD 대표부 대외협력부 근무

- 2014년 9월~ ‘알고가자’ VIP여행사 창업

/정리=김장선기자 kjs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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