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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기업-분원도자협동조합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에 위치한 ‘분원리(分院里)’. 20세기 초반까지 왕실 납품 도자기를 빚기 위해 장작가마 여기저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던 곳이다. 사기장(沙器匠)의 섬세한 물레질이 멈춘지 어언 103년. 그런데 그 분원리에서 다시 장작가마에 불을 지피려는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미강(美江) 노영재(55). 미강을 중심으로 모인 사기장 5명이 분원리에서 협동조합을 결성해 의미있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편집자주



조선시대 임금의 식사를 맡았던 관서 ‘사옹원(司饔院)’은 15세기 후반부터 궁궐에서 사용되는 도자기를 경기도 광주에서만 제작토록 했다. 그리고는 왕실 납품 도자기 빚는 곳을 ‘사옹원 분원(分院)’이라고 명칭했는데, 당시 광주에는 분원이 400곳 가까이 있었다.

하지만 가마에 불을 떼기 위한 장작이 고갈되면서 분원이 하나둘씩 사라졌고, 교통이 편리한 곳에 분원을 고정할 필요성이 대두되자 영조때인 1752년 지금의 분원리에서만 왕실 납품 도자기를 빚기 시작했다. 지역 명칭이 그래서 ‘분원리’가 됐다.

이같은 역사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경기도는 조선백자 마지막 가마터가 있던 곳에 지어졌던 폐교를 활용, 10여년 전 ‘경기도자박물관 분원백자자료관’을 설립했지만, 많은 이들이 이런 역사적 가치와 유래를 모르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광주에서 사기장들이 분원리에 모여 있을 법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미강은 분원리를 고집했고, 15년 전부터 분원리에서 그 옛날 왕실에 납품되던 도자기를 재연하고 분원리에서 마지막으로 꺼졌던 장작가마의 불씨를 피어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장작가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땅만 200평이 필요하고 예산도 2억이 든다”며 “사기장들이 작품을 팔아서 생계를 잇고 있는데 대부분 살림이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함께 힘을 모아 전시장도 만들고 홍보활동도 펼치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게 됐다”

올해 1월 결성된 분원도자협동조합에는 대표인 미강을 비롯해 미도(美陶) 구성회(70), 다선(多宣) 백영기(60), 청화(淸華) 장동학(51), 오름 조무현(48) 등 4명이 이사와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저마다 형편은 달라도 ‘조선 왕실도자기의 전통을 잇겠다’는 생각에는 이견이 없다. 그래서 이들 사기장 5인은 분원리를 활성화시키자는 취지로 자비를 들여 ‘분원 사옹원사람들’이라는 이름의 도자기 전시관 문을 8월 말 열었다. 작품이 팔리면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 뜻에서 수익금의 10%를 인근 분원초등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사기장들의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미강은 말한다. “박람회에 참가하려면 부스 비용이 수백만원 필요한데 만만한 비용이 아니다”라며 “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지난 7월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차문화대전 부스비용을 경기도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에서 지원받게 됐고 판로 개척에 큰 도움을 받아 저를 비롯해 나머지 4명도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강은 예전에 비해 왕실 도자기의 고장 ‘분원리’를 알고 찾는 발길이 늘어났다고 말하면서도 100여년 전 꺼진 장작가마의 불씨를 다시 지피는 것이야말로 진정 분원리의 명성을 되찾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심 부족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분원협동조합 노영재 대표 인터뷰



“TV 진품명품에서 최고가 조선백자는 대부분 분원에서 제작된 겁니다. 경기도 광주, 그 중에서도 분원리는 마지막 장작가마가 있었던 곳이어서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분원도자협동조합 대표인 미강 노영재(55)의 꿈은 두 가지. 3년 이내에 장작가마를 분원리에 만들고 이후 무형문화제에 도전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왕실 납품 도자기를 만들던 분원, 그 중에서도 마지막 장작가마가 있었던 분원리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무관심한 상황에서 나홀로 ‘명맥’을 유지하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적잖은 관광객들이 조선백자를 공부하러 분원리를 찾고 최근에는 한국분들도 많이 찾아오는데 정작 그 옛날 왕실 납품 도자기를 굽던 장작가마를 보여드리지 못하니 아쉬움이 클 수밖에요”

15년 전 분원리에 터를 잡은 미강의 머릿속은 온통 ‘분원리의 역사 가치’를 되살리는데 꽂혀있다. 그렇다고 미강의 꿈이 처음부터 사기장은 아니었다. 전남 영광에서 태어난 그는 18살 때 아버지 외삼촌(진외종조부)인 인간문화재이자 백자도예의 산증인인 호산 안동오(1919~1991) 선생을 통해 도자기를 접하고 군 제대 후 본격적으로 사기장의 길로 들어섰다.

“20살 때였어요. 어차피 도자기를 빚는다면 언젠가는 분원리에서 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죠” 그래서 고향을 떠나 30년 넘게 경기도에서 생활한 미강은 15년 전부터 분원리에 와서 산속에 허름한 집을 짓고 도자기를 빚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전에는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이 작품 감상 및 구입도 할 수 있도록 조금은 무리를 해서 ‘미강갤러리’를 남종면 분원길 25-1에 지었다. 조선 왕실도자기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분원리를 찾아도 맥이 이어지지 않아 딱히 작품 하나 볼 수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미강 스스로 오롯이 두 어깨에 짊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미강갤러리’를 비롯해 협동조합 전시관인 ‘분원 사옹원사람들’, ‘경기도자박물관 분원백자자료관’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미강의 노력 덕에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이곳 팔당호에 매운탕을 먹고 힐링만 하고 떠나던 외지인들이 조선 왕실도자기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된 것이다.

“지금은 가스가마로 짓지만 장작가마로 구워야 전통이 되살아납니다. 개인적으로도 장작가마를 짓겟지만 분원리가 조선 왕실도자기의 전통이 있는 곳이란 것을 잊지말고 광주시가 지금이라도 장작가마를 지어 관광객 유치에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는 말로 답답한 마음을 표현했다.

-분원도자협동조합 소개글 글·사진 | 유성열 기자 mulko@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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