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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왕궁에서 감옥으로… 마리 앙뜨와네트 왕비도 수감됐던 곳

 

테마여행가가 들려주는 프랑스

꽁씨에흐즈리(Conciergerie)

파리 센느강 중앙의 씨테 섬에 꼬깔 모자 모양의 지붕을 갖고 있으며 중세의 요새처럼 생긴 ‘꽁씨에흐즈리’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왕궁이었으나, 기능을 잃고 15세기부터 감옥으로 이용됐다.

대혁명 때에는 피의 공포정치를 하던 곳으로, 1천200명의 죄수가 수감됐고 대부분 ‘기요틴(Guillotine)’ 박사의 창작품인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789년 7월 14일에 대혁명이 발발하고, 1793년 1월부터 대 숙청 작업이 시작됐다. 1년 반 만에 혁명 재판소에서 사형 언도를 받고 꽁꼬드 광장과 바스티유광장에서 2천600명이나 처형됐다.

비운의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Marie Antoinette)’, 루이 16세의 여동생 ‘엘리자베스(Elisabeth)’를 비롯해 초기 혁명의 지도자들이었던 ‘당똥(Danton)’,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도 이곳에 수감됐다가 단두대에서 사라졌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왕궁
1358년 ‘루브르 궁전’으로 옮긴 뒤
왕궁 기능 잃고 15세기 감옥으로 이용
가난한 사람들은 짚 깔린 바닥에 수감
부유한 재소자 위한 독실·2인실은 위층

대혁명 발발 후 공포정치 산실로 둔갑
2600명이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
혁명 지도자 당똥·로베스피에르도 처형

마리 앙뜨와네트 왕비 두 달간 머물러
시동생인 루이 18세가 성당으로 바꿔

 

 

 


◇역사

서기 58년, 로마가 프랑스를 지배하면서 로마군단이 주둔해 발전했던 씨테 섬에 10세기 까페 왕조를 세운 ‘위그 까페(Hugues Capet)’를 시작으로 ‘씨테 궁전(Palais de la Cite)’을 왕궁으로 사용했다.

영주들의 비해 미약했던 선출직 프랑스 왕위를 계승하도록 바꾸면서 권력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로마 지배시기의 요새 같은 성을 왕위에 걸맞게 현대화하고 증축해 왕의 주거지로 변모했다.

‘루이 9세(Louis IX)’부터 시작된 행정조직과 사법부의 조직정비를 완료한 ‘미남왕 필립(Philippe le Bel)’이 치세하던 13~14세기에는 왕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화려함과 웅장함을 갖춘 왕궁으로 증축했으며, 왕을 보좌하는 기관들이 설치돼 행정적으로 중요한 장소가 된다.

1358년 파리에서 폭동을 일으킨 ‘에띠엔 마르셀(Etienne Marcel)’에 의해 씨테 궁전의 일부가 파괴되고 처참한 살육사건이 발생했다.

현명한 왕으로 유명한 ‘샤를르 5세(Charles V)’가 방어용 성벽으로 둘러싸인 루브르 궁전과 뱅센느 성을 선호해 왕궁을 ‘루브르 궁전’으로 옮기고, 중요 행정조직과 의회만 남았다. 왕에 의해 임명되는 ‘꽁씨에흐즈리’ 직책은 질서와 경찰역할을 행하고 죄수들의 명부를 관리하면서 자연히 건물의 한 부분을 감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혁명과 꽁씨에흐즈리

1789년 대혁명 발발 후 1793년 3월 출범한 ‘국민 공회(La Concention)’는 꽁씨에흐즈리 위층에 위치한 ‘그랑 샹브르(Grand Chambre)’에 혁명 재판소를 설치했다.

수 많은 반혁명 죄수들은 이곳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장으로 이송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수 많은 사람들에게 판결을 내렸던 ‘푸키에-탱빌(Fouquier-Tinville)’도 이곳에서 사형을 당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현재 방문객이 볼 수 있는 감옥 방의 모습과 마리 앙뜨와네트가 수감됐던 모습은 자료를 바탕으로 재현한 것이고, 실제로 마리 앙뜨와네트 왕비가 수감됐던 곳은 시동생 ‘루이 18세(Louis XVIII)’의 명령으로 성소로 바꿔 놓았다.

 



◇내·외부

▲경비병의 방(La salle des gens d’armes)

고딕 건축 양식의 장엄한 모습을 지닌 이 방은 길이 69m, 폭 27m, 높이 8m의 웅장한 방으로 미남왕 필립 시절인 1315년에 건설됐다.

8.5m 높이에 군더더기 없이 열을 맞춰 질서정연하게 올려진 아치를 보노라면 순수함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1618년에 큰 화재가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아직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경비병실의 역할을 잃으면서 벽을 세워 감방으로 변경됐으며,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감옥으로 사용되면서 식당으로 만든 것이 지금도 남아 있다.

▲부엌(Les cuisines)

1353년 ‘선량왕 장(Jean le Bon)’의 치세시절에 설치된 ‘주방(Salle des Cuisines)’은 두 개의 층으로 구성돼 있다. 위층에는 왕족들이 식사를 하던 곳이고, 아래층과 연결된 계단이 남아 있다.

▲감옥(Le quartier des prisons)

아래층에 마련된 감방은 가난한 사람들이 짚이 깔린 바닥에서 잠을 자고 용변을 해결했다고 한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시궁창에 비교될 정도로 지저분한 곳으로 심각한 위생문제가 있었다.

부유한 재소자들을 위한 안락한 독실감방은 위층에 위치했으며, 침대가 갖춰진 독실 또는 2인실로 돼 있다. 면회가 자유롭고 심지어는 식사도 배달되곤 했다.

▲여죄수의 뜰(La cour des femmes)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된 여죄수의 뜰은 건물의 최고 중심부에 위치했으며, 한 귀퉁이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에 죄수들이 몸을 씻었다고 전해진다.

 


▲지롱드 샤펠(Chapelle des Girondins)

대혁명 당시 왕비인 마리 앙뜨와네트가 ‘떵플 감옥’에 딸과 아들과 함께 수감됐다가 1793년 8월 20일 이송돼 이 곳에서 두 달간 머물렀다. 그 후 그녀는 10월 16일 꽁꼬드 광장으로 이송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대리석으로 된 왕비의 기념비가 있는 기도실, 왕비를 기념하는 제단은 그녀가 수감됐던 독방을 1816년 시동생 루이 18세가 형수를 추모하기 위해 성당으로 바꾼 것이며, 실제 24시간 밀착 감시하는 경비병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감옥에 병풍을 설치하고 생활하던 모습을 가까운 곳에 재현해 놓았다.

▲시계탑(La Tour de l’Horloge)

꽁씨에흐즈리에서 또 하나 볼거리는 ‘시계탑’이라고 불리는 동쪽 탑에 설치된 거대한 벽시계다.

47m 높이에 설치된 이 시계는 14세기 선량왕 장 때 만들어진 것으로, 시계가 드물던 과거 파리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제르멩 필롱(Germain Pilon)’이 조각한 이 화려한 시계는 대혁명 당시 혁명 분자들에 의해 ‘왕정에 충성을 다했다’는 죄목으로 용해됐다. 현재의 시계는 19세기에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 재현한 것이다.

 

>>테마여행가 안완기는…

한국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1992년 프랑스로 건너가 유럽의 건축을 공부했으며, 특히 프랑스의 풍부한 문화와 역사에 빠져 들게 됐다. 그는 이 나라의 문화에 대해 감상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서는 수 많은 여행객들을 보면서 프랑스를 제대로 느끼고 배우는 정직하고도 건강한 여행문화를 꿈꿨다. 지난 2003년부터 프랑스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홈페이지(www.algogaza.com)를 제작, 운영해 유용한 프랑스 여행관련 정보 및 자료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

<약력>

- 1986년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 1992년 프랑스 유학

- 1995년 Strasbourg 건축학교 수학

- 1998년 Val-de-Marne Paris 건축학교 수학

- 2002년 프랑스 테마여행 전문 가이드

- 2006년 ‘알고가자 프랑스’ 테마여행사 운영

- 2014년 ㈜OECD 대표부 대외협력부 근무

- 2014년 9월~ ‘알고가자’ VIP여행사 창업

/정리=김장선기자 kjs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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