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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만년설 그림같은 호수 풍경에 녹아들다

이한숙 작가의 감성여행기
스위스 몽트뢰

 

빨간 리사 버스 타고 스위스 제네바 도착
140m가량 높이로 물 뿜어올리는 제도분수 눈길

다음날 몽트뢰역으로 달리는 기차 창밖으로
끝도 없이 지나가는 레만호와 포도밭 눈요기
‘스위스의 리비에라’라고 불리는 몽트뢰
‘퀸’ 메인보컬 프레디 머큐리 동상이 위상 뽐내

저녁에 보러 간 ‘시옹성’ 노을 속 몽환적 실루엣
호수 너머 알프스 만년설과 어우러진 풍경 일품
돌아오는 길 퀸의 노래 가사 입가에 맴돌아


 

정오 무렵 제네바로 향하는 빨간 리사(Lihsa) 버스에 올랐다. 짧은 동안 열심히 발자욱을 남긴 안시도 그렇게 안녕이다. 버스는 고도가 높은 곳을 달렸다. 녹색 초원과 젖소들,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나무들, 높고 낮은 구릉들이 눈 아래로 펼쳐졌다. 구름 속의 어느 하늘 마을에 당도하자 십자가가 크게 그려진 스위스 국기가 휘날리는게 보였다. 드디어 기다리던 스위스 여행이 시작됐다. 감탄도 잠시, 졸다보니 어느새 버스는 제네바 버스터미널(Gare Routiere)에 도착했다. 터미널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너무 작았지만 코 앞에 영국교회가 있고, 제네바 기차역도 멀지 않은 좋은 위치였다.

스위스로 넘어왔지만 아직 오늘 저녁 묵을 곳도 정하지 않은 처량한 신세였다. 일단 근처의 브룬스윅 공원으로 갔다. 프랑스 국경에서 가까운 곳은 프랑스어를 쓰고, 독일 국경에 가까운 곳은 독일어를 쓰는 나라 스위스, 제네바의 간판은 프랑스어 일색이었다. 벤치에 앉아 아이폰 앱으로 호텔을 예약했다. 그 사이 사라졌던 친구가 손에 맛있는 바게트 빵을 들고 나타났다. 근처에 빵집이 눈에 띄지 않아 헤매고 있는데 친절한 교민 한 분을 만나 여행객은 절대 찾아낼 수 없는 맛있는 빵집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공원 근처에는 5성급 호텔과 고급 부티크 일색이어서 여행자 복장으로 캐리어를 끌고가 밥을 먹을 곳은 없어 보였다. 그녀가 사온 빵은 맛있었다. 빵 값은 거의 프랑스의 두 배, 스위스의 물가를 바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냄새 좋은 바케트는 나같이 나이 좀 든 중년의 사람들에게 언제나 배낭여행의 로망을 일깨운다.

요기를 한 다음에는 몽블랑 호수 한 가운데서 하늘 높이 물줄기를 뿜어올리는 제도(Jet d'Eau) 분수쪽으로 발을 옮겼다. 제네바에 착륙하는 비행기에 탄 사람 눈에 가장 먼저 띄는 이 분수는 어마어마한 속도(시속 200km)로 140m 가량 높이로 물을 뿜어 올린다. 끝도 안보일 정도로 긴 레만호수를 한가로이 바라보다가 제네바를 생략하고 바로 몽트뢰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정해놓은 시간이 짧아질수록 우연의 변수는 줄어들고 계획이 우선하기 쉽지만 여전히 우연은 내 여행의 중요 변수다. 즉흥 속에 숨은, 나도 모르는 욕구를 여행이 아니면 언제 존중할 수 있겠는가.

기차역으로 가서 8일짜리 스위스 패스를 먼저 샀다. 나중에 바젤역에서 10일짜리로 연장했다. 처음부터 10일짜리를 샀으면 변경비(25프랑)를 아꼈을 것이다. 그래도 차액만 지불하면 돼서 다행이었다. 패스를 손에 넣으니 세상을 손에 넣은 듯 든든했다. 제약없이 원하는 때에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다음날,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바로 몽트뢰로 갔다. 달리는 차장 한쪽으로는 그림같은 레만호가 끝도 없이 지나가고 다른 한쪽으로는 노랗게 물든 언덕위의 포도밭이 쉴새 없이 지나갔다. 그 사이에 로잔, 라 코트, 모르쥬, 뤼트리, 퀼리, 브베같은 아름다운 마을들도 함께 사라졌다.

기차역에서 내려 언덕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니 바로 호숫가 산책로가 이어졌다. 잡은 호텔이 호숫가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일부러 그 길을 택한 것이다. 산책로 전 구간에는 심상치 않은 현대 예술 조각들이 설치돼 있었다. 알고보니 몽트뢰 국제 비엔날레 기간이어서 출시 작품들이 전시된 것. 갇힌 곳이 아니라 이렇게 열린 공간에 쉽게 볼 수 없는 현대 작품들을 놓으니 작품들은 저절로 풍경의 일부가 됐다.

스위스의 리비에라라 불리는 몽트뢰는 인구가 3만이 넘지 않는 작은 도시다. 19세기의 바이런과 셸리 같은 유명 시인 외에도 많은 작가, 예술가들이 머물기를 동경하는 도시 몽트뢰. 비엔날레 전시 외에도 이곳에 오면 꼭 봐야할 동상이 있는데 소울의 대부 레이찰스와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퀸의 메인 보컬 프레디 머큐리 동상이다.

걷다보니 마르쉐 광장에는 벌써 크리스마스 마켓 준비가 한창이고, 키가 큰 머큐리의 동상이 호반쪽에서 위상을 뽐내고 있었다. 왼손에 스틱 마이크를 잡고 오른손을 허공을 향해 높이 들어올린 머큐리 모습에서 라이브 당시의 폭발적인 열기가 그대로 전달됐다. 동상 발치에는 추모자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이 여러개 놓여있었다. 퀸의 성공적인 앨범 중 다수가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이곳의 마운튼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졌다.

1978년 퀸은 ‘재즈’라는 앨범을 처음으로 이곳에서 녹음했고 결과가 만족스러워 스튜디오를 통째로 인수했다. 머큐리 사후에 발매된 ‘메이드 인 헤븐’ 앨범의 커버는 그가 가장 좋아했던 자리인 마르쉐 광장 앞에서 찍은 사진으로 제작됐다. 그의 동상이 서있는 바로 그 자리다. 머큐리는 평소 친구들에게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원한다면 몽트뢰로 오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퀸의 팬이라면 퀸의 스튜디오 체험박물관에 꼭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동상 왼편에는 기둥없이 둥그렇게 만들어서 마치 호수에 떠있는 것 같은 인상적인 선착장이 있는데, 그 입구에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을 창시한 클로드 놉스(Claude Nobs)를 기념하는 예술작품이 있다. ‘Allo Claude’라는 제목의 재미있는 박스모양의 작품 안에는 여러악기가 톱니처럼 돌아가고 있는데 ‘쇼는 계속돼야한다(Show must go on)’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 문구는 클로드가 1967년에 기금을 모아 첫 재즈페스티벌을 연 이후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 발전해온 페스티벌의 역사를 저절로 떠올리게 한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와서 언덕 위의 구시가지를 돌아보고, 가보지 않은 쪽의 호숫가를 천천히 다시 한 번 산책했다. 아까는 보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았다. 사다리를 올라가 별을 따는 아이 모습을 그린 작품의 경우 아이가 가르키는 손을 따라가면 거기에서 진짜로 반짝이는 하늘의 별을 볼 수 있게 돼있다. 작품 중에는 한국 작가인 차주만의 ‘오리엔탈 진주 탑’도 눈에 띄었다. 리옹 비엔날레에서도 그랬지만 이곳에서 한국 작가 이름을 발견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좀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욕심을 내서 시옹성(Chateau de Chillon)을 보러 갔다.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남짓 떨어진 곳에 성이 있었다. 바이런이 시옹성에 6년 동안 갇혀 지낸 종교 개혁가 프랑수와 보니바르(Franncois Bonivard)를 소재로 쓴 서사시 ‘시옹성의 죄수(The Prisoner of Chillon)’ 때문에 유명해진 성은 호수의 암반 위에 자리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동화책에 나올 것만 같은 전형적인 성의 외관을 하고 있지만 위치한 곳이 물이어선지 신비감을 주었다. 성의 메인 입구는 이미 닫혀 있었다. 아쉽지만 외관만 둘러 볼 수 밖에 없었다.

중국인 관광객 한 무리가 우루루 몰려와 사진을 찍고 빠져나가자 나 혼자만 남겨졌다. 성 주변은 더 고요해졌다. 성 한켠을 돌아 내려가니 옹트뢰까지 연결되는 아기자기한 오솔길이 나왔다. 조금 걷자 작은 바위돌로 둘러싸인 아담한 비치가 나왔다. 그곳 바위에 자리를 잡자 성의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옹성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위치였다. 바위 아래 쉴새없이 일러이는 호숫물 위로 물오리들이 춤을 추듯 떠있다. 저녁 노을이 호수 위 구름 속으로 떨어지고 미약하게 붉은 불을 켠 시옹성은 점차 몽환적인 실루엣을 드러냈다. 성 뒤의 호수 너머로는 알프스 만년설이 빛나고 있었다. 모자랄 게 없는 완벽한 풍경 속에 내가 있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동안 퀸의 노래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요(Spread your wings)’의 가사가 계속 입가를 맴돌았다. 머큐리의 동상을 처음 보는 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던 노래다.

“너의 작은 날개를 펴고 멀리, 저 멀리 날아 올라요... 그건 당신이 자유로운 사람이기 때문이죠.(Spread your little wings and fly away, fly away far away... that’s because you’re a free man)”

/정리=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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