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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인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 작은 베르사유 정원은 파리시민의 ‘힐링 요새’

베르사유 정원 설계자가 설계
17세기 파리정원의 멋 간직해
프랑스 대혁명때 공원 재산 몰수
복원 거친후 1922년 시민 품으로

 

테마여행가가 들려주는 프랑스

소 공원(Sceaux Park)

프랑스 일드프랑스 오드센의 소(Sceaux) 시에 자리한 대규모 녹지 공원으로 17세기 말 앙드레 르 노트르에 의해 조성됐다. 작은 베르사유 정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소 공원은 한가로이 산보하거나 운동을 하고, 아이들이 뛰어 놀며, 인상주의 화가 ‘마네’와 ’모네’의 작품 풀밭 위의 식사처럼 삼삼오오 짝을 지어 피크닉을 하는 모습에서 프랑스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건설에서 ‘꼴베흐(Colbert)’ 가문까지

왕의 고문관을 지낸 루이 뽀티에가 1597년 처음으로 이곳에 성을 건설했고, 루이 14세의 총리이던 꼴베흐(1619∼1683)가 1670년 영토를 사들이면서 성을 확장하는데, 건축가 ‘끌로드 페로’, ‘앙뜨완느 르뽀트르’, 왕실 실내 장식가 ‘샤를르 르 브룅’, ‘프랑스와 지하흐동’, 그리고 조각가 ‘앙뜨완느 끄와스보’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에게 의뢰해 루이 14세의 총리가 살만한 아름다운 성으로 탈바꿈을 시킨다.

재무장관을 지내다가 자신의 집 ‘보 르 비꽁트’ 성을 너무 화려하게 만든 탓에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하루 아침에 감옥으로 가는 ‘니꼴라 푸케’의 사건을 지켜본 꼴베흐는 왕의 눈치를 살피면서 성을 확장했다. 꼴베흐의 큰 아들이며 해양 수산부 장관을 지낸 세뉴래 후작(1651∼1690)’이 영토를 상속 받아서 미화작업에 심혈을 기울이며, 길이가 1킬로미터에 달하는 운하를 파도록 지시했으며,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며 ‘베르사유’ 궁전의 성당과 파리의 ‘앵발리드’ 성당을 설계한 ‘줄 아흐두앵-망사르’에게 당시 유행하던 ‘오렌지 온실’ 건설을 의뢰했으며, 17세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볼 수 있다.
 

 

 




‘맨느’ 공작과 공작부인

세뉴래 후작이 사망한 후 루이 14세와 애첩인 몽테스팡 후작부인사이의 서자이며 왕의 총애를 받던 ‘맨느 공작’이 새로운 주인이 된다. 1694년 왕자의 지위를 획득했으며, 1714년에는 왕의 후계자로 인정되기까지 하던 맨느 공작이 ‘루이즈 베네딕트 드 부르봉 꽁데’와 결혼을 한 뒤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볼테르를 비롯한 문학인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모든 것을 보고 알고 이해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성격대로 시인과 연극인들을 이곳으로 초대해 화려한 조명과 불꽃 놀이를 동반하는 음악회나 신화 극을 상연하여 사교계에 선망의 대상이던 ‘소 공원의 밤’이라는 연회를 자주 베풀었다.

‘뻥띠에브흐’ 공작

1753년 맨느 공작부인이 사망하고 1773년까지 아들들의 소유였다가, 잠시 왕정 소유로 넘어갔다가 1775년 ‘뻥띠에브흐 공작’이 새로운 주인이 된다.

루이 14세와 몽테스팡 후작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뚤루즈 백작’의 아들인 ‘뻥띠에브흐 공작’은 ‘브르따뉴’ 지방의 영주이면서 해군 제독으로도 유명하지만, ‘아네’, ‘앙브와즈’, ‘비지’, ‘블르와’, ‘샹뜨루’, ‘샤또네프’, ‘외’, ‘랑부이에’ 성들을 소유한 부유한 부동산가로도 유명했다.

그의 딸은 이후에 ‘필립 에갈리떼’로 불리는 필립 도흘레앙에게 시집을 가는데, 프랑스의 마지막 왕이 되는 ‘루이 필립’의 어머니가 된다.

 

 

 



파괴에서 복원까지

프랑스 대혁명의 격동기에는 ‘소’ 성이 국민의 재산으로 지정이 돼 몰수되면서, 공원에 놓여있던 유명한 조각가들의 작품들과 성의 가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하는데, 오늘날 파리의 ‘룩상부르그’ 정원이나 ‘뛸르리’ 정원에서 볼수 있으며, ‘루브르’ 박물관에도 전시돼 있다.

1798년 ‘생 말로’의 도매상인이며 유능한 재력가인 ‘르꽁트’가 1798년에 영지를 사들여서 ‘꼴베흐’ 당시에 세워진 성을 철거하고 정원에 나무들을 뽑아버린다. 다행히 ‘오로흐(새벽)’ 별장, ‘오렌지 온실’, ‘마구간’, ‘보초막’, ‘관리인 집’ 등등은 현재까지 보존돼 있다.

1828년, ‘소’의 소유주의 딸 ‘안느 마리 르꽁트’와 결혼한 ‘트레비즈’ 공작이 새로운 주인이 되면서, 본래대로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1856년부터 건축가 ‘조셉 미쉘 르 수파쉐’에 의해서 ‘꼴베흐’의 성이 있던 자리에 ‘루이 13세’ 양식으로 붉은 벽돌과 돌을 재료로 건물을 짓기 시작했고, 1862년에서야 실내장식이 완성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 드 프랑스 박물관’이 들어서다

1922년 ‘트레비즈’ 공작의 상속자이며 무남독녀인 ‘포시니 시스트라 Faucigny-Cystra’ 공주가 영지를 팔려고 하자, ‘소’의 시장이 도의 재산으로 구입해 일반인들에게 공원으로 공개하도록 센느 도의회에 간청을 했다.

1937년부터 성에는 ‘일 드 프랑스 박물관’이 들어섰으며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수많은 기부 작품들을 예술적인 가치와 역사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고 전시하고 있다. 이 곳은 ▲‘꼴베흐’에서 ‘트레비즈’까지 ‘쏘’ 성의 변천사 ▲‘일 드 프랑스’에 존재하던 왕족들의 거처 ▲17∼19세기 초 사이의 ‘일 드 프랑스’ 정원과 조각 ▲‘일 드 프랑스’의 도자기 등 네가지 테마로 전시실을 꾸며놓고 있다.

 

 

 

>>테마여행가 안완기는…

한국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1992년 프랑스로 건너가 유럽의 건축을 공부했으며, 특히 프랑스의 풍부한 문화와 역사에 빠져 들게 됐다.

그는 이 나라의 문화에 대해 감상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서는 수 많은 여행객들을 보면서 프랑스를 제대로 느끼고 배우는 정직하고도 건강한 여행문화를 꿈꿨다.

지난 2003년부터 프랑스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홈페이지(www.algogaza.com)를 제작, 운영해 유용한 프랑스 여행관련 정보 및 자료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

<약력>

- 1986년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 1992년 프랑스 유학

- 1995년 Strasbourg 건축학교 수학

- 1998년 Val-de-Marne Paris 건축학교 수학

- 2002년 프랑스 테마여행 전문 가이드

- 2006년 ‘알고가자 프랑스’ 테마여행사 운영

- 2014년 ㈜OECD 대표부 대외협력부 근무

- 2014년 9월~ ‘알고가자’ VIP여행사 창업

/정리=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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