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역사교과서 전면 국정화가 무산되면서 여론 악화 속에 일단 ‘급한 불’은 끈 모양새지만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정책기조를 손바닥 뒤집듯이 바꿔 교육현장의 혼란을 가져왔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 28일 현장검토본 발표 이후에도 “역사교과서는 이념이나 정권과 상관없는 교육의 문제”라고 강조했지만 결국 정국 상황에 따라 방침을 바꿔 정치적 차원에서 추진됐음을 자인한 셈이 됐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해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확정 고시하며 내년 3월 전국의 모든 중1, 고1부터 국정교과서를 사용하게 하겠다고 밝혔지만 반대 여론에 ‘최순실 게이트’ 파문까지 겹친 상황에서 ‘전면 적용 1년 연기 및 국검정 혼용, 올해 희망학교 우선 사용’ 방안을 내놓면서 ‘양다리 걸치기’란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교 현장과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됐다.
교육부는 내년에는 국정교과서 사용 희망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해 국정교과서를 주교재로 사용하도록 하고 나머지 학교는 기존대로 현행 검정교과서를 사용하게 되는데, 연구학교 지정을 위해서는 학교운영위원회 논의와 학교장 신청 등을 거쳐야 해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발 등 학교 현장의 갈등이 예상된다.
국정교과서는 새로 개정된 2015 교육과정이, 기존 검정교과서는 현행 2009 개정교육과정이 적용돼 학교에 따라 다른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것도 문제다. 수능을 봐야 하는 고등학생의 경우 학교에 따라 서로 다른 교과서, 다른 교육과정으로 배우고서 한국사 시험을 치러야 하는 혼란이 생길 수 있다.
검정교과서를 새로 개발하더라도 현재 마련된 편찬기준은 그대로 적용되는 것도 논란이다.
이에 따라 국·검정 혼용은 과거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 사태의 재연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정교과서가 사실상 폐기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용한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은 이날 “2018년에 최대한 많은 학교가 국정교과서를 선택하게 하겠다”고 밝혔지만 교과서 선택권 자체가 학교장에게 있는 상황에서는 외면받을 공산이 크다.
결국 이번 사태는 정부가 애초부터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일정을 무리하게 당겨가면서까지 정책을 밀어붙이려다 좌초한 사례로 기록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는 분석이다. /이상훈기자 l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