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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종지도' 한국여인 삶의 체취

‘학교종이 땡 땡 땡…’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골학교는 산골 마을공동체의 중심이었다. 봄, 가을 열린 운동회는 동네 전체의 잔치였고 자식아이 담임선생은 바로 부모의 스승이 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정겹던 시골학교 종소리는 귓가에서 멀어져갔고, 재 너머 마을까지 들리던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출산율 감소, 이농현상 등 급격히 변해가는 사회현상속에서 시골 학교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통폐합 방침이 세워진 1999년에는 한해동안 927곳의 학교가 통합되거나 문을 닫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떠나간 시골학교 운동장은 잡초만이 무성히 세월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공허의 그 땅에 희망의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공교육이 이뤄지는 예전의 그 학교는 아니지만, 폐교를 임대해 예술창작공간으로 활용하거나 다채로운 문화체험공간으로 사용하는 예가 늘고 있어서다. 이는 마을공동체를 되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경기도에도 통폐합으로 문을 닫은 폐교가 총 107개다. 본지는 경기문화재단과 공동으로 ‘폐교탐방-마을공동체를 살리자’를 기획, 도내 폐교 가운데 예술창작이나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폐교들을 찾아가 총 14회에 걸쳐 그곳의 모습을 자세히 소개한다.

<1>편. 여주 강천초 강남분교-여성생활사 박물관(채현 천연염색연구소)

한국여성의 삶이 깃든 ‘보고(寶庫)’
여주군 강천면 굴암리에 자리잡은 여성생활사박물관. 영동고속도로 여주 인터체인지를 들어서서도 강천면을 지나 비포장도로길을 20여분 달렸을까, 학교 정문인 듯 한 빛바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차 한대 간신히 지나다닐 흙길이 산과 들을 두 갈래로 나눠 놓고 있다. 그 길 바로 옆에 1999년 폐교가 된, 그러나 이젠 여성생활사 박물관으로 재탄생한 강남분교 팻말이 성큼 다가온다.
강남분교는 문을 닫은 지 2년만에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 곳이다. 2001년 천연염색가인 이민정(여) 관장이 학교를 임대해 박물관과 천연염색 공방을 만들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었기 때문이다. 이 관장은 당시 사재를 털어 이 곳을 박물관 시설로 개조, 소장하고 있던 여성 관련 유물 3천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흙먼지 날리며 학교운동장으로 돌진하는 차 엔진소리에 건물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얼굴을 내민다.
“먼 곳까지 오시느라 힘드셨죠. 길은 해매지 않았나요.” 취재차 들르겠다는 사전 전화를 해놓은 터라 전화를 받은 김진흥 박사(여성문화예술제 기획위원장)가 다가와 기자를 반갑게 맞는다. 그는 5월 이곳에서 열릴 여성문화예술제를 준비하기 위해 거의 상근하다시피하고 있단다.
김 박사의 소개로 둘러본 각 전시실은 한국 여성들의 삶이 그대로 배어있는 보고(寶庫)다. 1층은 다도교실, 전통염색 전시실, 작품전시실, 솜씨방 등이 들어서 있다. 또 복도에는 야생화 사진들과 염색재료들이 전시돼 있다.
이 관장이 학교 뒤 공터에 직접 재배했다는 ‘쪽’과 강천면에서는 흔한 재료인 황토, 이외에도 은행, 감 등 염색재료들이 천연빛을 자랑한다. 특히 이 관장이 전국팔도를 다니며 할머니들에게 전수 받았다는 명주는 형용할 수 없이 곱다.
2층은 고전의상및장신구, 가구및생활용품 전시실, 그리고 복도에는 일반유물과 전통 아동복식, 주방용품 등이 전시돼 있다. 1천5백년이 넘은 굽다리 긴목 항아리, 이화무늬 백동장, 여성들 사이에서 어떤 권력을 상징했던 열쇠패, 120년 된 재봉틀, 시대를 추정하기 힘든 돌다리미 등. 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 여성들이 주로 사용한 생활용품과 장신구 등 유물이 가득하다.
유물들 사이로 쪽진 머리에 은비녀를 꽂은 정숙한 여인이 천연염료로 물들인 고운 한복을 입고 찻잔을 든 채 나타날 것만 같다.
이 관장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학교 반대편에 위치한 교장 사택에 머물고 있다. 부관장인 서양화가 박태병씨, 사무국장 김정훈씨, 그리고 김진흥 박사와 둘러 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여기서 주방장일까지 도맡아 한다는 박 부관장은 오래전부터 여주에 내려온 화가다. 그러다 여주에서 뜻 있는 일을 하는 이 관장을 알게 돼 박물관일을 함께 해왔다. 또 이날 김정훈 사무국장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생태체험학습장을 만들어 녹색바람을 이곳에서부터 일으킬 각오란다.
이 관장이 유물 3천여점을 수집한 계기는 20대 한창 젊은 시절 일본유학길에 오른 것이 이유가 됐다. 당시 그는 거기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접한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 어떤 젊은 일본 여성이 대대로 물려온 낡은 누비옷을 자기 어머니로부터 곧 물려받게 된다며 좋아라 하는 거야. 오래된 물건을 싫어하고 서구의 것만 쫒는 우리의 현실에서 ‘아차’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더라구. 그후부터는 거의 버려지다시피하고 있는 우리 전통유물을 모으기 시작했지.”
이후 천연염색가로서의 길을 걸어온 이 관장은 97년 이 유물들을 짊어지고 여주로 내려와 걸은리 인가에 터를 잡았다. 그러나 외부인에 대한, 그것도 혼자 지내는 여자에 대한 시골사람들의 눈초리는 차갑기만 했다. “혼자 지내니 이런 저런 소문을 말로다 할수 없지. 어떤 때는 천연염색재료로 쓰기 위해 오랫동안 정성스레 가꿔온 쪽밭을 아무개가 경운기로 밀고 가는 거야, 허참. 그렇지만 결국 모두들 마음을 열더군. 이젠 나도 여주 사람 다 됐어.” 그러나 산너머 산.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은 거둬졌지만 경제논리 앞에 박물관은 현재 또 한번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학교 소유자인 여주교육청에 2년치 임대료를 내지 못해 10여 가지 물건에 가압류 딱지가 붙어 있는 상태다.
“천연염색을 배우고 싶어하거나 유물들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는데, 사실상 관람료를 거의 받지 않고 있는 형편이라 수익을 낼만한 것이 없다”며 박 부관장은 한숨을 내쉰다.
김 박사는 “문화예술 공간을 무조건 임대업으로만 여기는 행정관행이 문제”라며 “소규모 민간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관장은 박물관 개관전 유물 3천여 점을 여주군에 기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처음엔 긍정적으로 검토하려던 군청은 군수가 바뀌자 태도를 바꿔 신경도 쓰지 않더라”며 서운함을 드러낸다.
그렇지만 이들은 단지 앉아서 불만만 토로하진 않는다. 오는 5월 1일부터 열리는 여성문화예술제를 여기서 열 예정이다. 현재 10여개의 여성?문화?사회단체들이 모여 예술제를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는 유학자들로 구성된 성균관도 동참하고 있다.
21세기는 힘의 논리가 지배적이던 남성성이 아니라 비폭력, 섬세함 등을 특징으로 하는 여성성이 주도하는 시대다. 삼보일배의 모습이 그렇고, 촛불집회가 이를 입증한다. 여성의 역사가 녹아있는 산교육 현장, 여성생활사박물관의 중요성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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