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 그림책 시리즈 37권 ‘지우개’는 지우개와 종이가 펼치는 엉뚱한 세상을 보여준다.
책은 표지부터 특별하다.
제목이나 지은이, 펴낸곳 등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표지는 연필로 아무렇게나 그려 놓은 그림과 지우개로 채워져 있다.
평범하지 않기에 책장을 넘겨보고 싶은 호기심이 든다.
첫 장 왼쪽에는 물고기가 된 지우개가 있고, ‘닭’이라는 글자가 있고 다음장에는 누군가가 닭이라는 글자를 지우개로 쓱쓱 문질러 지우고 그 옆에 ‘뱀’이라는 글자를 써놨다.
왼쪽은 글자가 지워지고, 오른쪽은 그려지는 수수께끼 같은 흐름은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왼쪽 글자가 다 지워지고 아무것도 읽을 수 없어진 책의 마지막은 오른쪽에 생겼던 그림 마저도 모두 지워져 버린다. 그런데 모든 그림을 지우다 공책이 찢어져 구멍이 생겨버리고, 그 구멍으로 작은 물고기 지우개가 사라진다.
마지막 장면을 넘겨 보니, 그 물고기 지우개는 전혀 다른 물고기가 돼 있다.
독자들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사물이 지우개인지 물고기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다양한 사물들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지우개’는 어떤 한 가지 사물에는 한 가지 모습만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모습이 있고, 그 모습은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의미를 재미있게 담아낸 책이다.
오세나 작가는 “지우개는 무언가를 지우기만 하는 물건이 아니라 쓰거나 그리기도 할 수 있는 물건이다.
지우개와 달처럼 지우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비우기도 하고 채우기도 하면서 자연처럼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담긴 책을 통해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