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목적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은사’ 김윤신 미술관에 도착
1984년 무작정 연 첫 전시 호평
지금까지도 2년마다 신작 선보이는
변치않은 순수한 열정·작가정신 감동
슈룹 무경계프로젝트 ‘온새미로’
흔쾌히 보자기 들고 인증샷 동참
선생님과 함께 거닌 까릴로 해변
정성껏 구워주신 소갈비 맛 ‘생생’
이번 남미여행의 최종 목적지 부에노스아이레스 김윤신 미술관은 굵고 키가 큰 가로수와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한 중심가를 약간 벗어나 한인 의류상가가 밀집해 있는 지역에 위치한다.
3층 건물입구, 철창과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고, 전혀 미술관으로 보이지 않는 외관, 단단히 잠긴 철문을 열고 2층으로 오르니 강한 색감과 형태를 지닌 선생님 작품들이 전시된 미술관이다.
예약을 통해 신분을 확인한 후에야 관람이 가능하다.
남미 대부분이 그렇지만 이 지역의 치안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도착하자마자 선생님께서는 최근에 완성하신 몇 점의 회화작품을 꺼내 보여주시고 신작 ‘창세기2’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슈룹 무경계프로젝트 2018 ‘온새미로’와 일맥상통하는 의미가 있어 여행길에 들고 다니며 인증샷을 찍었던 보자기에 대해 설명을 드렸더니 흔쾌히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며 함께 인증샷을 남겨주셨다.
미술관에 전시된 화려한 평면작품들과 조각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작품창고를 열고 작품들을 꺼내 보여 주시며 “이 선생, 이 작품 좀 봐줘. 이게 요즘 작업하는 건데 어때요? 난 점점 예술이 어렵더라고, 벌써 그림 그린지 꽤 되었는데 알 것 같다가도 잘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84세 연세에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계실까?
더 놀라운 건 미술관의 많은 작품들을 2년마다 새롭게 바꾸신다는 것이다.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그림을 주로 그리지만 얼마 전까지 나무 조각도 계속 해 오셨고, 2년 마다 열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미술관의 날 행사에 관람객들에게 계속 신작을 보여주셨다는 선생님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누구도 대신 도와줄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혼자 작업을 해 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선생님 작업은 모든 생각을 버리고 주어진 재료를 마주하며 무에서 시작해 재료의 형태와 질감을 느껴가며 혼을 다해 톱질을 가하고, 자르고, 깎고, 갈아가며 작품을 완성해 간다.
그래서인지 작품 한 점 한 점에 기가 느껴지고 생동감 있는 밝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대학 1학년 꿈 많던 내가 선생님 강의에 반해 조소를 선택하길 너무도 잘 했다는 생각과 함께 38년이 지난 지금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고 순수한 열정과 건강한 작가정신으로 오로지 작업에 매진하고 계시다는 사실에 감동이 밀려와 버럭 선생님을 안아 드렸다.
3층은 두 분의 생활공간이고 옥상에 김란 관장님의 작업공간이 있다.
구석구석 짜임새 있게 공간을 사용하며 이 큰 살림을 관리하고 선생님을 수발하며 작품까지 하고 계신 김란 관장님 또한 작은 거인처럼 보였다.
선생님은 처음 남미 여행 오셨을 때 대 자연과 조각 재료 특히, 나무에 매료됐다고 설명했다.
워낙 오래된 고목들이 많았고, ‘빨로산또’, ‘게브라초’ 라는 이 지역의 나무는 돌 보다 더 단단해 목조작업을 했던 선생님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당시 첫 전시를 하게 되었던 이야기를 들려 주셨는데 얼마나 열정적이셨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1984년 무작정 산 후스또 라는 부에노스 외곽 시골마을에 집을 얻고,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이 나라에서 전시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 물었고 당시 공보관이었던 고부안 씨를 만나 이력서를 들고 부에노스아이레스 현대시립미술관장 로베르또 델 비자노를 찾아 가게 됐다.
작품을 직접 보고 결정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 두 달 후에 작품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와 여기저기서 나무를 가져다 길바닥에서 나무를 깍고 다듬어 몇 점의 작품을 완성했고,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 로베르또 델 비자노는 식물원에서의 야외 전시를 제안했다.
선생님은 첫 전시가 호평을 받아 이후 계속 전시 제안이 이어진 탓에 한국에 들어 올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서양의 최고 휴양지 까릴로, 은의 바다 마르 델 쁠라따, 예술가의 거리 라 보카 엘 까미니또,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화가 베니토 킨케라 마르틴 미술관, 산 뗄모 벼룩시장, 정신적인 묵상을 하러 가는 장소 레콜레타 묘지, 부에노스아이레스 현대미술관으로 20세기 중남미의 미술계를 주도한 작가들의 핵심 작품들이 모여 있는 말바 미술관, 100년된 카페 토르토니, 유럽 정취의 플로리다 거리,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성당, 누에스트라 쎄뇨라데삘라르 성당, 루한대성당을 12일간 함께 여행하며 먹고, 자고, 즐기고, 기도하며 오로지 예술가로 살아오신 선생님의 삶과 작품세계, 그리고 35년간 이민자로서 남미에서 살아오신 이야기를 직접 두 분을 통해 들으니 진정한 예술가, 오로지 예술혼을 불사르며 구도자의 길을 걸어오신 선생님이 더욱 존경스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선생님과 함께 까릴로 해변을 거닐며 부드러운 바람과 신선한 공기를 맘껏 마시고 조개껍데기도 줍고 부드러운 대서양 바닷물에 발목을 담그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더욱이 아르헨티나 소고기가 정말 맛있다고 오기만 하면 실컷 먹여주시겠다고 하시던 약속을 지키시느라 땀 흘리시며 레드와인, 레몬즙, 왕소금에 잰 소갈비를 은근한 참숯불에 정성껏 구워주신 선생님표 소갈비(아사도)의 환상적인 맛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행복했던 남미여행을 생각하며 나는 또 어디론가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정리=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