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지치거든
/오세영
그리움에 지치거든
나의 사람아
등꽃 그늘 아래 앉아
한 잔의 차를 들자
들끓는 격정은 자고
지금은
평형을 지키는 불의 물,
청자다기에 고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구나
누가 사랑을 열병이라 했던가,
들뜬 꽃잎에 내리는 이슬처럼
마른 입술을 적시는 한 모금의 물,
기다림에 지치거든
나의 사람아,
등꽃 푸른그늘 아래 앉아
한 잔의 차를 들자.
참으로 단아하고 따뜻한 시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작은 배를 타고 쉼 없이 멀고 먼 항해를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바닷길, 언제 어디서 폭풍우를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눈을 뜨면 망망대해 수평선만 보인다. 그저 두려울 뿐이다. 이럴 때 멀리서 섬이 보이면 삶의 생동감을 느끼게 된다. 그곳에서 잠시 닻을 내리고 정박한 다음 이 시를 읽고 싶다. ‘그리움에 지치거든’ 혹은 ‘기다림에 지치거든’ 세상에 지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등꽃 푸른 그늘 아래 앉아’ 한 잔의 차를 들면서. 이 시를 읽게 되면 아마도 주술처럼 새로운 힘이 솟구칠 것만 같다.
/정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