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7 (월)

  •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순록

                                /김춘리



골목이 한 마리 순록이라면



제 뿔에 화들짝 놀라는 민망한 계단

강을 건너려 다닥다닥 붙은 담벼락엔

뿔 냄새가 치열하겠지



서로 다른 생선 냄새가 나가는 모퉁이

술 취한 사내는 전봇대 곁에서 사냥꾼처럼 순록의 발자국을 더듬겠지

툰드라의 순록을 떠올리겠지



갈증이 자라 붉어지는 뿔들

삽시간에 달려들어 눈밭을 핥는 화해

야생의 본능으로

순록의 눈이 맑아지겠지



소금 이끼를 먹은 순록에게서 노린내가 나듯

골목을 벗기면 진동하는 지린내

한밤중 몰래 누고 가는 오줌을 받아먹는 골목은



순하고 민망하겠지

계단은 화들짝 놀라고.

 

 

순록은 가장 온순할 것 같은 포유류, 골목을 말하고자 치환의 방식을 빌은 은유의 이 시는 그저 길게 드러누워 순한 되새김질이나 하는 골목의 암묵적 역할 내지는 초식성 습성을 암유하고 있다. 골목이 순록으로 치환되는 순간 계단은 민망하게도 제 뿔에 놀라고 강을 건너려 담벼락을 뿔로 들이받기도 하겠다. 골목은 그러나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한 게 아니라 끊임없이 내닫는다는 발상이 시베리아 눈밭이나 툰드라를 누비는 순록의 기능적 유사점으로 대비되어 시의 질료가 되었을 것이다. 골목은 야생이며 야행의 본질을 지녔나 보다. 술 취한 사내의 귀갓길, 또는 한밤중 몰래 눈 오줌발이나 받아먹는 골목을 이토록 이질적 묘사로 생동감을 불어넣다니! 사라져가는 골목과 함께 점차 희미해져가는 골목적 정서가 아쉽다. /이정원 시인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