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다
/황구하
한나절 내내 미동도 없다
늦가을 오후 바람 좋은 풀밭에 앉아
어디 보자, 누가 먼저 움직이나
북천 너럭바위 두루미랑
수읽기를 하다가 겨루기를 하다가
스르르 손 풀고 일어섰다
그는 외발로 서 있었다
우리 주변에는 고수(高手)들이 참 많다. 재테크의 고수, 연애의 고수에서부터 노래의 고수, 술의 고수, 춤의 고수, 업무처리의 고수, 공부의 고수, 입담의 고수, 시 쓰기의 고수 등등. 이런 고수들과 같이 있을 때면 우리 같은 하수(下手)들은 기가 죽고 맥이 풀리기도 한다. 그런데 두루미가 흔히 외발로 오래 서 있는 것은 체온 유지를 위해서라고 한다. 두루미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절대고수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그렇게 고수들이 저마다의 고수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고수가 되기까지의 가혹한 인내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고 그 경지에 찬사를 보내야 마땅하겠지만, 부러워할 것까지는 없겠다. 우리는 증오와 사기와 협잡에서는 최악의 하수이지만, 우리도 우리들 나름대로의 고수다운 면이 있을 것이니 말이다. ‘스르르 손 풀고’ 일어나서 생각해본다. 나는 무엇의 고수일까.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