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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클림트의 세 폭 천장화

 

1894년 오스트리아 문화교육부가 구스타프 클림트에게 빈 대학 본부의 천장화를 의뢰했던 것은 클림트가 그때까지 오스트리아에서 보여주었던 작품의 스타일, 즉 매우 고전적이면서도 우아한 역사화를 기대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클림트가 제출한 세 점의 스케치는 의뢰자를 매우 당혹스럽게 했을 뿐만 아니라, 빈 대학 교수들의 큰 반발을 샀다.

천장화는 총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 중 클림트는 세 개의 천장 귀퉁이에 ‘법학’, ‘의학’, ‘철학’을 그리기로 되어 있었다. 가운데 구역과 나머지 한 개의 귀퉁이는 한때 그와 작업을 같이 했던 ‘마치’라는 동료에게 의뢰됐다. 마치가 담당했던 가운데 천장화의 작품 제목이 ‘어둠에 대한 진리의 승리’였다는 것만 보아도, 이 대학에서 화가들에게 기대했던 천장화의 주제를 쉽게 간파할 수 있다. 대학에서 이뤄왔던 학문적 성과에 대한 찬사, 그리고 종국에는 학문이 어둠을 물리치고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기대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클림트가 제출한 스케치에서는 비관과 불안, 그리고 세기말의 기운이 가득했고, 그건 의뢰자들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 것이었다. ‘철학’이라는 작품에는 화면의 오른쪽 상단에 미지의 존재가 흐릿하게 떠오르고 있다. 눈을 감아버린 이 흐릿한 존재는 ‘어둠에 대한 진리의 승리’는 커녕 관객들에게 그 어느 것도 확실하게 말해줄 수 없을 것 같다.

캔버스에는 여러 사람들이 뒤엉켜 존재하고 있다. 얼굴을 감싸고 괴로워하는 이들, 사랑에 도취된 이들, 어린아이, 노인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무질서 속에서 매우 격정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들 무리 가장 아래에 풍성한 머리와 뱀의 눈을 가진 한 여인만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다. 그림은, 아무리 발버둥치고 애를 써도 결국 인간이란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걸 말하고 있으며, 이는 빈 대학 교수들이 지니고 있었던 자부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메시지였다.

‘법학’과 ‘의학’이라는 작품도 비관적이고 우울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법학’에서는 법의 집행관 혹은 심판관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모두 팜므 파탈(Femme Fatale)들이며 그들 앞에서 손을 뒤로 묶인 채 고개를 숙인 남성은 카프카의 ‘심판’ 속 주인공처럼 고독하기만 하다. ‘의학’에 등장하는 건강의 여신 하기에이아 역시 팜므 파탈로 묘사가 되어 있으며 온갖 고통과 죽음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인간들을 등지고 매정하게 서있다. 세 작품 모두 인간이란 거대한 운명 앞에 나약하게 스러지고 마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학문이 취할 수 있는 역할은 매우 미미해 보였다. 뿐만 아니라 팜므 파탈들의 이미지는 매우 선정적으로 보였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라는 글에 큰 영감을 받은 화가는 여성들을 성적 매력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들로 묘사를 했으며, 이는 작품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증폭시켰다.

‘철학’의 스케치가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큰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본 작품들은 빈 대학 천장에서 완성될 수 없었다. 극소수의 교수들이 그의 작품을 지지했지만, 나머지 교수들은 그의 작품이 자신들을 모독하고 있다며 주문의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져 당시 문화교육부 장관은 사퇴를 해야만 했고, 빈 대학 교수직 물망에 오르고 있었던 클림트 역시 임용이 무산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클림트는 이미 예견하고 있던 이 싸움에서 더욱 더 전투력을 발휘했다. 그는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작가로서의 소명을 가지고 이 작품을 완성하겠노라고 선언했으며, 또한 앞으로 자신은 공공기관으로부터 어떠한 주문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역사적 승리는 예술의 절대적 자유를 주장했던 이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불행하게도 이 세 작품들은 세상에 현존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났는지, 한 수집가의 손에 들어갔다가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해 소실되어 버렸다. 현재 우리로서는 원작을 담고 있는 흑백 사진으로만 이 작품을 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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