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는 신화에 둘러싸인 인물이다. 28년의 불꽃처럼 짧고 강렬했던 생애를 마감하고 요절한 화가는 용모한 준수에 섬세한 감성, 그리고 반항적인 기질을 지닌 인물이었다. 화가는 그러한 자신의 매력을 십분 발휘해 수많은 자화상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연애 편력과 연인들의 누드들을 거침없이 남겼다. 과감하고 에로틱한 그의 표현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세련돼서 그가 생존했을 당시에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그를 열렬히 추종하는 관객들이 늘 있어왔다. 에곤 실레에게 쏠리는 대중들의 관심은 영화 ‘에곤 쉴레 : 욕망이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어쩌면 실존 인물보다 훨씬 더 준수하고 매력적일 수도 있는(?) 주연 배우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빈 분리파 화가들이 대개 그러했듯 에곤 실레는 자유로운 성적 표현을 추구했다. 클림트의 영향을 듬뿍 받고 성장한 이 젊은 화가는 전위적이고 혁신적인 화풍을 전혀 인정해주지 않는 보수적인 도시 빈에서 세상을 향해 맞서 싸울 비장한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마르고 창백한 피부와 자신의 성기까지 노출하고 있는 자화상 누드는 위선적이고 억압적인 기성세대들의 세계에 맨몸으로 도전장을 내민 화가의 전신과도 같았다.

그 시절 인간의 무의식과 욕망, 거친 감성을 다룬 화가들이 여럿 활동하고 있었고, 간혹 이들은 인간의 내면을 표현했다는 의미에서 ‘표현주의’라 일컬어진다. 에곤 실레 역시 표현주의 화가로 분류되곤 하는데, 그의 작품에는 다른 표현주의 화가들의 작품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담겨있다. 거칠게 채색된 붉고 얼룩덜룩한 피부와, 앙상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인물의 신체는 독특한 세련미를 담고 있다. 그처럼 앙상하고 병약한 존재야 말로 그 시절 젊은이들이 지닌 고뇌였던 양 측은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때로는 관객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기도 하는데, 특히 부모와 형제들이 질병으로 죽어간 사연, 아내가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병으로 죽고, 수개월 후 그 역시 아내에게 독감을 옮아 요절했다는 사연은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에 측은한 감정을 증폭시키곤 한다.

현대사회에서 화가는 신화를 통해 탄생된다. 하지만 화가의 진실한 면모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그 신화를 걷어내야 할 때가 있다. 화가의 곡절의 생을 담은 영화와 수필과 각종 소설은 화가를 둘러싼 신화의 껍질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진정한 안목을 지닌 관객이라면 풍파에 휘둘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시선으로 작품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에곤 실레는 과연 그 벌거벗은 자화상을 통해 당신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가.

이십대의 청년은 온몸을 던져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병약하고 창백한 듯 보이는 그의 신체는 한 치의 가식도 없는 진짜 그의 모습이었다. 화가 자신과 연인들의 누드는 에로틱했다. 하지만 이 역시 꾸밈없는 그들의 진짜 모습이었다. 무지한 수집가는 그에게 좀 더 자극적인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가는 그러한 수집가들에게 오히려 냉담하게 굴곤 했다. 종교와 위선이 인간의 세세한 행동거지를 억압하고 있었을 때, 신사로 위장한 이들은 공공연하게 매춘을 일삼곤 했다. 어떤 예술가들은 파격적인 성적 표현이야말로 위선적인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을 해방하는 수단이 될 거라 믿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해방되기를 그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화가는 젊었고 그의 작품도 젊었다. 죽음의 공포가 그처럼 젊은 예술가를 에두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치기어린 감정이 엿보일망정 젊은 화가는 계산적인 판단으로 잔꾀를 부리거나 피신하지 않는다. 이십대에 요절한 화가가 우리 사회에 보내고 있는 강렬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러한 이십대 시절을 가져보지 못했던 관람자라면 누구나 에곤 실레에게 질투를 느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