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 시대 마케팅 트렌드
식품·유통업계가 ‘재미’를 앞세운 B급 코드 유튜브 콘텐츠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기존 마케팅이 당장의 제품 홍보를 통한 구매 유도가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오로지 재미를 담은 콘텐츠 자체에만 중점을 둔다.
브랜드 친밀도와 호감도를 높여 충성 고객을 만들고, 향후 지속 구매를 유도하는 계획이다.
그 마케팅 전략의 중심에 ‘밈’과 ‘B급 캐릭터’가 있다.
1일1깡 신드롬… ‘밈’에 빠진 MZ세대
요즘 MZ세대에게 최고 화제 인물을 꼽으라 하면 가수 겸 배우 비(정지훈)이다.
비는 2000년대 초중반 한국을 대표하는 월드스타였으나, 이후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발표하는 앨범이 연이어 부진하면서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비가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건, 그가 2017년 발매한 앨범 [MY LIFE愛]의 타이틀 곡 ‘깡’ 때문이다. 사실 ‘깡’은 비에게 흑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대중에게 혹평과 외면을 받은 곡이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깡’ 덕분에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1일1깡’(하루에 한 번씩 깡 시청하기), ‘깡팸’(깡+패밀리), ‘깡지순례’(깡+성지순례), ‘식후깡’(식사 후 깡 시청) 등 다양한 유행어가 돌고 있다.
이 열풍 덕분에 ‘깡’은 음원 사이트 100위권에 재진입하는 차트 역주행을 하고 있다.
‘깡’ 신드롬처럼 특정 콘텐츠를 온라인상에서 대중이 따라하며 놀이로 즐기는 현상을 밈(MEME)이라고 부른다.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에 발간한 책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처음 사용했다.
도킨스는 밈을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으로 사용했으나,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밈은 단순한 콘텐츠 복제를 넘어 재가공, 재해석 개념으로 변했다.
기존 콘텐츠를 조롱하는 식으로 즐기는 소수의 놀이 문화를 다수가 즐기면서 유행이 되는 것이다.
2012년 7월 발매돼 미국 빌보드 핫100 2위까지 오른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밈으로 볼 수 있다.
유튜브라는 국경의 제약을 받지 않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그의 B급 정서 가득한 뮤직비디오를 따라하는 패러디물이 쏟아지면서 ‘강남스타일’은 그해 가장 화제의 노래가 됐다.
식품·유통업계, 밈 열풍에 소비자 잡기 혈안
밈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가장 핫한 트렌드로 자리 잡자, 여기에 식품·유통업계가 가장 발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트렌드에 민감한 업종인 만큼 제품 홍보·마케팅 전략으로 밈을 활용한 것이다.
농심은 지난 4일 비를 새우깡 홍보모델로 발탁했다. 깡 열풍이 불자 네티즌들은 비를 새우깡 모델로 섭외해 달라고 요청했고, 농심이 이를 받아들였다. 비가 출연하는 새우깡 광고는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앞서 버거킹(주식회사 비케이알)도 지난해 광고 모델로 배우 김영철과 김응수를 섭외하면서 밈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두 배우는 10여 년 전 출연한 작품 속 대사가 온라인상에서 밈이 되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김영철은 2002년 방영된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외친 “사딸라”(4달러)가 뒤늦게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한 어린이가 방송 촬영 중인 김영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사딸라 아저씨’라고 아는 척을 했을 정도였다.
김영철의 광고 출연 덕에 버거킹의 세트 상품 올데이킹은 출시 9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1천만 개를 돌파했다.
김응수는 2006년 개봉한 영화 ‘타짜’의 대사가 1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네티즌들 사이에서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그중 한 대사 “묻고 더블로 가”를 활용해 광고로 만들면 좋겠다는 네티즌들의 제안이 쏟아지자, 버거킹은 즉각 더블 패티가 특징인 올데이킹 업그레이드 메뉴를 알릴 모델로 김응수를 발탁했다.
박미선 역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된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의 한 에피소드가 재조명되면서 유행어를 얻었다. 딸의 숙제인 밀린 일기를 해결하는 에피소드에서 “(일기)스토리는 내가 짤 거고 글씨는 누가 쓸래?”라고 말하는 장면이 패러디됐다.
이 장면으로 박미선은 최근 유한양행의 여성용 유산균 제품 ‘엘레나’ 광고를 촬영하기도 했다. 박미선은 지난달 유튜브 채널 ‘미선임파서블’에 유한양행의 여성용 유산균 제품 ‘엘레나’ 광고 촬영 영상을 게재했다.
KGC인삼공사도 밈을 활용한 마케팅으로 젊은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온라인몰 ‘정몰’(정관장몰)의 광고에 배우 나문희와 김용림, 개그맨 최양락을 연이어 기용했다.
해당 광고 덕에 정몰 신규 구매 고객 중 2030세대 비율은 70%를 넘어섰고, 매년 매출은 200% 이상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빙그레우스’·‘처돌이’…
요즘 대세는 ‘B급 캐릭터’
기업들은 밈뿐만 아니라 B급 캐릭터를 활용한 마케팅 전략으로 MZ세대를 공략하기도 한다. 올해로 창립 53주년을 맞은 빙그레가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빙그레는 역사가 긴 장수 기업인만큼 ‘바나나맛우유’를 비롯한 스테디셀러 제품들로 익숙하지만, 다소 올드한 이미지여서 젊은 세대에게는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이에 빙그레는 B급 감성이 가득한 오리지널 캐릭터로 이미지 변신에 나섰다. EBS의 캐릭터 펭수와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유재석)을 광고 모델로 기용했던 빙그레는 올해 초 공식 인스타그램에 애니메이션 캐릭터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이하 빙그레우스)를 공개했다.
그 외에도 붕어싸만코, 꽃게랑, 메로나, 스모키베이컨칩, 비비빅, 요플레, 끌레도르가 의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빙그레우스는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셀카를 공개하는가 하면 ‘붕어싸만코’의 광고 모델인 ‘펭수’와 함께 찍은 사진과 빙그레 제품을 자신만의 하오체로 소개한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 ‘빵또아’를 매트리스로 깔고 누워서는 “뻐근한 어깨와 허리엔 역시 빵또아 매트리스라 하오. 푹-신하여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소. 침대가 참으로 넉넉하오”라고 글을 남기는 식이다.
팔로워들은 “빵또아는 여고 시절의 추억이오”, “폐하 너무 귀여우십니다”, “왕자님! 매트리스 구매 좌표 부탁드려요” 등 댓글을 달며 빙그레우스와 소통하는 것을 놀이로 즐기고 있다.
이 덕분에 빙그레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빙그레우스 업로드 이전 9만7천여 명에서 6월 둘째 주 기준 13만7천여 명으로 4개월 만에 4만여 명이 늘었다.
빙그레는 빙그레우스 외에도 ‘끌레도르’, ‘메로나’, ‘더위사냥’ 등 자사 아이스크림을 이용한 새로운 캐릭터들을 연이어 선보이며 SNS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B급 감성으로 재조명받은 식품업계 캐릭터도 있다. 처갓집양념치킨(옛 처갓집양념통닭)의 ‘처돌이’는 기존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한 마스코트 캐릭터였다.
2016년 인형 증정 행사를 했을 때까지만 해도 무명이었지만, 2017년 한 아이돌 그룹의 브이라이브 방송에 노출되며 상황이 반전됐다.
처돌이는 ‘처갓집 치킨맛은 처돌았지만 처돌이는 처돌지 않았다고 해요’라는 유머 게시글과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촌스럽고 균일하지 못한 인형 모양이 오히려 인기 요인이 됐고, ‘무엇에 푹 빠진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로 불리기도 했다.
이에 처갓집양념치킨은 지난해 5월 ‘처돌이’ 인형 증정 행사를 열었고, 행사 첫날 2만 개의 수량이 조기 품절됐다. 그로도 모자라 처돌이 인형이 중고 사이트에서 비싼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
이후에도 처갓집양념치킨은 넥슨의 온라인 FPS게임 ‘서든어택’과 제휴해 처돌이를 게임 캐릭터로 등장시키는가 하면, 코글플래닛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굿즈를 출시하기로 했다.
B급 코드 마케팅은 양날의 검
치밀하면서도 장기적 전략 세워야
그동안 기업들에게 MZ세대는 바이럴 마케팅을 위한 보조 공략 대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 MZ세대는 트렌드를 주도하는 동시에 구매력까지 갖췄다. 그 영향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주 공략 대상으로 부상한 결정적 이유다.
MZ세대는 유튜브와 SNS 등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글보다는 영상과 이미지를 선호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최신 트렌드는 기존의 주류 문화와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특별한 문화 코드이다. 여기에 ‘재미’가 깃들어 있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러한 MZ세대를 공략하기에 ‘밈’과 ‘캐릭터’를 활용한 B급 코드 마케팅은 최적화된 수단이다. 주제와 콘셉트만 잘 잡는다면 대중에게 각인되기 쉬울뿐더러, 전파 속도도 빠르다.
이러한 마케팅이 당장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MZ세대에게 브랜드 친밀도를 높여 장기적으로 지속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게 기업들의 생각이다.
문제는 밈이나 B급 캐릭터를 유행으로 만드는 게 과거와 달리 누군가 의도한다거나, 만들려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은 네티즌들에 의해 우연히 등장한 것이다. 사실상 예측이 불가능하다.
지금 유행하는 ‘밈’을 빨리 파악하고 마케팅에 활용하려 해도 ‘밈’의 기본 속성이 ‘2차 저작물’인 만큼 초상권이나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최근 롯데칠성음료가 자사의 숙취 해소 음료 ‘깨수깡’ 홍보를 위해 비의 ‘깡’을 패러디한 이미지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고 삭제했다.
네티즌들은 실제 주인공인 비가 출연하지 않고, 당사자의 허락도 없이 브랜드 담당자가 비의 모습을 따라한 채 해당 음료를 들고 있는 모습을 지적했다. 밈을 통해 자사 제품을 띄워보려 했다가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만 추락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B급 코드를 활용한 단기적 이목 끌기 마케팅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음을 염두하라고 경고한다.
또한 B급 캐릭터를 만들고 유행시키는 것 역시 쉽지는 않은 일이다.
지난해 EBS의 캐릭터 ‘펭수’가 큰 인기를 끌자 기업 및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캐릭터 만들기에 나섰지만 이 중 상당수가 이름조차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사라졌다.
단기간에 효과를 보려 하기보다는 디테일한 캐릭터 설정과 세계관,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장기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빙그레 미디어 전략팀 조수아 차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밀레니얼과 Z세대 마케팅은 ‘봉테일(영화감독 봉준호의 디테일함을 일컫는 표현)’ 못지 않은 디테일을 통해 고객과의 소통을 이끌어 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는 브랜드 중심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게 아니라, 네티즌들이 ‘오리지널 콘텐츠’를 뼈대 삼아 ‘재미’라는 살을 덧붙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놀 재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