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편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딸아 , 좋은데 가서 잘 살아라."
31년 전 딸을 잃은 아버지가 기억마저 희미해진 딸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며 남긴 한 마디다.
김영복(69)씨와 아들은 7일 화성시 병점근린공원을 찾았다. 이날 딸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다.
특히 오빠는 비통한 모습으로 현장에 들어섰다.
김씨의 딸은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이춘재에 의해 숨졌고, 이곳에서 딸의 유류품이 발견됐다.
이날 위령제에는 김씨 등 유가족을 비롯해 나원오 형사과장과 이정현 중요사건 미제수사팀장, 피해자보호 전담직원 등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관계자 5명도 참석했다.
김씨는 헌화를 마치고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유가족은 “30년이나 지난 딸이라 뚜렷이 기억나진 않는다. 그냥 딸이 편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입을 열었다.
딸과 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 혼낸 기억만 난다는 김영복씨는 “딸이 너무 어릴 때 죽어서 해준 것도 없고 불쌍하다”며 “당시 9살이던 딸이 민방위훈련을 따라오겠다고 떼쓰는 것을 못따라 가게 하려고 혼냈다. 이런 기억만 난다”고 울먹였다.
유가족들은 지금까지 과거 경찰에게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 가족은 “사과는커녕 얼굴도 한 번 못봤다. 당시 경찰은 왜 유품을 찾고 은폐했는지 모르겠다. 죽인 놈도 나쁘지만, 은폐한 놈은 더 하다”며 “한 번 이유라도 알고 싶다. 왜 숨겼는지. 그렇지만 않았어도 여기가 개발되기 전에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격양된 모습을 보였다.
또 김씨는 “이춘재는 내가 보면 죽여버린다”며 “내가 죽더라도 같이 죽는다. 뭐한다고 9살짜리 애를… 인간도 아니다”고 분노했다.
이춘재의 추가 범행 자백으로 혹시나 내 딸일까 하는 마음으로 경찰을 찾아갔다는 김씨는 “30년간 아무 소식이 없어 설마 하는 마음에 경찰을 찾아갔다”며 “경찰이 '이춘재가 따님을 죽였다'고 말했다” 밝혔다.
30여 년전 딸을 실종신고 했던 이 날을 위령제로 정했다는 유가족은 “7월 7일이 실종날인지 너무 바쁘다 보니 잊고 살았다”며 “애엄마는 아직 딸이 이춘재에게 살해당한지 모른다. 실종인줄 알고 있다. 눈물만 나고 안좋은 기억이 떠올라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내 딸이니까...” 하고 눈물을 보였다.
유가족과 함께 현장에 동행한 법무법인 참본 이정도, 부지석 변호사는 “당시 담당수사관들이 저지른 사체 은닉과 증거인멸, 허위공문서 작성 및 범인 도피 등은 지난주 전부 수원지검으로 송치됐다”며 “그러나 해당 범죄 사실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 없음 의견을 토대로 불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변호사는 “가해자는 정년을 누리고, 천수를 누리는데 현재 피해자는 시신조차 못찾은 부분이 상당히 아쉽다”며 “검찰에서 이 공소시효에 대해 법리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좀 더 유연하게 판단해주면 하는 바람이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난 3월 제기한 국가배상소송을 통해 당시 경찰들의 불법 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한다는 주장을 입증해 나갈 예정이다”며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중 시신을 찾지 못한 유일한 사건인 만큼 이 사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한편, 이춘재가 추가로 자백한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은 당시 경찰이 피해자 유류품과 유골등을 발견하고도 은폐해 당시 형사계장과 형사 등 2명을 사체 은닉 및 증거인멸 혐의로 입건했으나 이들 모두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받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유가족의 법률대리인 이정도 변호사는 지난 3월 사건을 은폐한 당시 담당 경찰관들을 고발했다.
[ 경기신문 = 박한솔 기자 김기현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