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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보는 세상] 사과(謝過)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 조희문
  • 등록 2020.08.11 06:09:20
  • 인천 1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시상작의 표절시비에 관해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올해 1월 양영희 감독이 자신이 연출한 일본 NHK 다큐멘터리 ‘흔들리는 마음’(1996)의 9분40초를 홍형숙 감독의 ‘본명선언’(1998)에서 무단 도용했다는 문제제기를 한지 6개월 만이다. 지난 7월 24일 부산영화제 공식 SNS 계정에 올라온 입장문은 크게 네 가지 내용이다. 1998년 당시 ‘본명선언’이 부산영화제 운파상을 수상할 당시의 경과와 홍형숙 감독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인정, 수상 철회 여부, 양영희 감독에 대한 사과, 그리고 지난 2월 7일 열린 비교상영회(주최 김명화 양영희)에서 홍형숙 감독의 동의 없이 ‘본명선언’을 제공한 것에 대한 사과 등이다.

 

‘본명선언’ 논란은 지난 1998년, 부산영화제의 기록영화 부문인 운파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재일교포 다큐멘타리 감독 양영희가 ‘본명선언’은 주제가 자신이 만든 ‘흔들리는 마음’과 유사하며, 장면 중 일부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등의 문제제기를 하면서 불거진 문제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용을 넘어 ‘표절’ 문제로 번졌다. 두 작품을 살펴 본 모 언론사에서도 ‘표절’로 결론짓고, 영화제 측의 시상 철회와 재발방지를 위한 다짐을 요구했다. 그러나 영화제 측은 오히려 ‘표절’을 부정하며 논란을 잠재우기에 급급했다. 영화제 측의 편을 들어줄 평론가나 교수들을 앞세워 ‘주제는 비슷하지만 표절은 아니다’라는 여론을 만들었다. 이 일을 주도한 인물은 이용관 부집행위원장(당시)이었다.

 

이 문제가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매듭을 짓지 못한 것은 양영희 감독의 신분이 조총련계라 출입국이 제한되어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던 탓에 자료를 입증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올해 1월, 양영희 감독이 다시 문제제기를 하면서 비교상영회까지 열었다. 세월이 흐른 탓인지 양영희 감독의 입장에 동조하는 영화인들도 나왔다. 일부 영화인 중에서는 양 감독의 예전 주장을 외면한 것에 대한 반성과 양심선언을 내놓기도 했다. 결국 부산영화제 측이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아쉬운 것은, 영화제 측이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사태를 규명하기보다는 마지못해 끌려가고 있는 듯 한 인상을 주는 부분이다. 양영희 감독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홍형숙 감독도 배려하는 듯 하기 때문이다. 선정을 철회하지 않은 채 명확한 결론은 미루었다.

 

성격은 다르지만 ‘택시운전사’도 비슷하다. 5.18 광주사태를 처음 보도한 독일기자 위르겐 핀츠히터를 태우고 현지에 잠입한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일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는 전국적으로 1천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붐을 일으켰다. 정치에 대해선 도무지 관심이 없던 택시운전사가 현장을 목격하면서 새롭게 자각한다는 구성은 관객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영화가 개봉될 때까지만 해도 김사복의 존재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직업이 택시운전사이며 독일 기자를 태우고 현지에 잠입했다는 이야기만 떠돌 정도였다. 때문에 영화의 구성은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르게 각색되었다. 중학생 딸을 키우고 있었다거나 광주 험지까지 가게되는 중요한 이유를 제공하는 월세 사정 같은 것이다. 반전이 생겼다. 김사복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그의 아들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김사복씨는 1986년에 사망했으며, 직업도 일반 택시기사가 아니라 호텔에 소속된 ‘택시사업자’였다. 외국어도 영어, 일본어에 능통했고, 민주화 인사들과도 광주에 가기 이전부터 교분이 있었다. 영화속 김사복과 실존인물 김사복은 여러 가지로 다른 모습이다. 사실에 기초했다던 영화 구성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영화사 측이나 감독의 해명, 사과가 한마디 없다. 관객들은 영화가 보여주는 대로 보기만 하면 그만인가? 아니면 말고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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