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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베테랑…그러나 언제나 死線에 선 떨림

[Job & Life] 수원중부경찰서 강력계 형사 박병주 경사
경찰투신 왜? 18세때 논둑길서 만난 ‘제복 입은 사나이’에 반해서
형사로서 꿈? ‘화성연쇄살인사건’ 집념의 수사 하승균선배처럼만

 

“순간마다의 섬뜩함, 곡절 많은 ‘인간군상’ 보면 절로 숙연해져….”

 

전라도 남원의 한 시골마을. 18살의 여드름 소년이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논둑길을 뛴다. 그때 맞은편에서 걸어 오는 ‘제복 입은 사나이’가 그 소년의 눈에는 그렇게 ‘빛나’ 보일 수가 없었다.

 

경찰생활 18년째를 맞이한 수원중부경찰서 형사과 강력3팀 박병주(42)경사가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해 경찰서 문을 두드리게 된 계기다.

 

박 경사는 “그때 본 빛나는 제복 대신 늘 꾸깃 꾸깃 한 점퍼와 운동화를 신고 18년을 보냈지만 그래도 한 점 의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박 경사가 89년도에 처음 경찰에 들어와 배치 받은 곳은 지방청 강력계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였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섬뜩해지는 사건입니다.

 

초년병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옆에서 지켜봤는데, 그렇게 어마어마한 사건의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가끔 섬뜩해질 때가 있다”고 박 경사는 설명했다.

 

그렇게 시작한 형사 생활. 잊을 수 없는 ‘첫 추억’은 누구에게 나 있을 터다. 흉하게 변사한, 그 중에서도 물에 ‘퉁퉁’ 불어난 시체와 그 냄새를 박 경사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강에서 실종된 사체들은 대부분 경기도 인근의 천에서 발견되기도 하는데 처음 봤던 그 사체의 모습과 냄새를 잊기 힘들다”고 박 경사는 말했다.

 

가스가 가득 차 힘줄이 툭툭 불 거진 남산만한 배, 메스를 들이대자 바람빠진 풍선처럼 푹 꺼지며 새나오는 역한 냄새들. “화장실에 가서 구역질을 한참 하고 나왔는데, 이후에 상사가 밥 먹으러 가자고 한 곳이 수육집이었다”고 박 경사는 껄껄 웃었다.

 

하지만 당시의 ‘역한 감정’마저도 이제는 ‘추억’이다. 이제는 그런 변사체들을 보면 오히려 ‘마음이 아프단다.’ 박 경사는 “무슨 사연 때문에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죽고, 아무렇게 시체가 야산을 뒹굴고, 신원을 추적하고 가족들을 찾아 시신을 인도할 때 그 장면이 마음도 아프고 그만큼 보람 도 있다”고 말했다.

 

수많은 범죄, 그 중에서도 ‘강력’ 범죄를 맡는 그의 일상은 늘 ‘사선’에 선 것처럼 위태롭다. 동료가 흉기에 맞기도 하고, 박 경사 자신이 직접 그런 위험에 처할 때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주 5일 근무제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어렸을 때는 ‘강력반 형사’인 아버지를 마냥 자랑스러워하던 아이들도, 머리가 굵어지면서는 ‘형사만큼은 되지 않겠다’고 한다.

 

“지금 그래도 제 꿈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집념 있게 쫓은 하승균 선배만큼만 해보자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식구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작은 집’ 하나 마련해 전세탈출을 해보는 것이고요(웃음).”

 

형사와 피의자의 관계는 무엇일까. “10명의 범인을 잡으면 그 중 한둘과는 일을 떠나 친구로 남는 것 같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걸, 실제 제가 일을 하면서도 느끼고, 그래서 죄는 밉지만 사람만큼은 미워할 수 없는 이들을 보면 눈물이 날 때도 있다”고 박 경사는 말했다.

 

얼마 전에는 10여년 전 ‘주유소 강도 용의자’로 만난 피의자의 딸 돌잔치에도 갔다. “피의자로 만났지만 나 때문에 피의자가 손을 씻고, 저도 피의자로 인해 도움을 얻다보면 묘한 ‘동료의식’이 형성되기도 한다”고 박 경사는 설명했다.

 

일선 형사로만 18년. 그의 얼굴 어딘가에는 ‘날카로움 속에 부드러움’이 묻어난다. 드라마와 영화 속, 범인을 취조하는 ‘험악한 인상’의 형사는 온데 간데 없다.

 

오히려 박 경사의 표정은 ‘인상 좋은 농부’에 가깝다. 불혹을 넘긴 그의 온화한 표 정 어딘가에는 18년 차 베테랑 형사의 냄새가 물씬 난다. ‘날카롭지만 부드러운 힘’, 아마 그것이 바로 베테랑의 냄새가 아닐까. /유양희기자 y9921@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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