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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동락(同樂)보다 독락(獨樂)

 

가만히 실눈을 뜨고 보았다. 이른 새벽, 그 녀석이 얼핏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잠에서 깬 녀석은 작은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곳저곳을 뒤적거리다 나오는 것 같았다. 주방에 들러 물을 먹는가 싶더니 설거지 해 둔 빈 그릇 하나하나 냄새를 맡아 보는가 하더니 화장실에 들러 앙증맞은 자세로 소변을 보았다. 곧이어 안방 침대로 올라 배를 뒤집고 한참을 뒹굴 거리다가 다시 거실로 나왔다. 이제는 공을 물고 소파 계단으로 올라가서는 굴리고 물어오고 굴리고 물어오는 행위를 연거푸 해댔다. 무엇이 그렇게 신이 났는지 중간 중간 기합을 넣기도 하며 엉덩이를 쳐든 그 자세를 보다말고 나도 모르게 푸하하,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우리 집 강아지는 그렇게 혼자놀이를 이미 신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나는 도무지 혼자놀이에 재미를 붙일 수가 없었다. 그저 답답하고 숨이 턱턱 막힐 뿐, 갇혀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분통만 터질 뿐이다. 연이어 쏘아대는 코로나19 확진자들의 순번이 찍힌 안전 안내 문자가 마치 총알처럼 쩌릿쩌릿 와 박혔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돌입으로 출근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 지금의 현실이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이 아닐까도 싶다. 와르르 몰려다니며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며 자기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지난날들이 분명 있었다. 그런 시간들을 뒤로하고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만남이라니, 얼굴 마주하는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한다니, 코로나19가 판을 치는 지금이야말로 혼자 노는 즐거움, 독락(獨樂)의 지혜가 필요할 때가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 선생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 경주로 내려와 독락당(獨樂堂)을 지었다고 한다. 독락당(獨樂堂)은 말 그대로 혼자 즐기는 은신처라는 뜻으로 그가 지은 사랑채 이름이었던 것이다. 나이 든 회재 선생은 중앙 정계에서 물러나 조용히 자연과 벗하며 혼자만의 성찰을 통한 독락의 지혜를 터득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초를 다투며 달리던 일상이 코로나19로 인하여 멈춰버린, 21세기 오늘 날의 현실 앞에 주어진 억지 독락(獨樂)의 기회. 이건 어쩌면 전화위복의 기회, 벗어날 수 없다면 즐길 수밖에 없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 마치 전쟁처럼 출근을 하고 사회 속, 사람 속에 섞여 휴식을 잊은 채 어쩌면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천천히, 천천히’가 아닌 ‘빨리, 빨리’의 경쟁 속에 소용돌이 쳤던 내 일상이 멈추자 마침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 답답한, 참으로 어리석었던 일상이 말이다. 이제는 알 것 같다. 혼자 있어 숨이 턱턱 막히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야말로 혼자 즐기는 지혜를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우리 집 강아지도 아는 혼자 하는 놀이를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이 나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즐겁게 해 준다는 기본. 그것을 기본으로 내가 나와 노는 즐거움을 이제부터라도 배우고 싶은 것이다.

 

현관 밖은 위험하다니, 여럿의 만남은 더 위험하다니 나와 남을 위해서라도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혼자 놀고 싶은 것이다. 혼자 하는 식사, 티타임, 영화 보기, 운동, 책 읽기 등등. 서서히 젖어들다 싶다. 코로나19라는 황망한 현실 앞에 여럿이 섞여 즐기는 동락(同樂)이 아니라 혼자서 누리는 독락(獨樂)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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