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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의창]6·25전쟁 ‘인천상륙작전’ 결과와 의미

 

1950년 9월 15일 06시30분에 실시한 인천상륙작전 계획과 결과 및 의미를 상기해본다. 이 해 6·25일 북한군의 남친 이후 낙동강 전선에서 위기를 넘긴 유엔군은 적을 일거에 포위 격멸할 목표하에 인천상륙작전을 진행하면서 대반격작전을 전개함으로써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상륙작전계획은 1950년 7월 초 맥아더 장군이 그의 참모장 알몬드에게 “서울의 적 병참선 중심부를 타격하기 위한 상륙작전 계획을 고려하고 상륙지점을 연구하라”는 지시와 더불어 시작됐다. 맥아더 장군의 구상은 북한군의 전진이 계속되어 병참선이 신장될 것을 예견하고 아군을 적의 후방 깊숙이 침공시켜 병참선을 차단하고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부대와 연결작전을 전개하여 적을 일격에 섬멸한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맥아더의 작전참모부장 라이트 준장이 이끄는 합동 전략기획단에 의해 연구되었으며 ‘크로마이트’라는 작전 명칭 아래 인천이 상륙지로 결정됐다.

 

미 합참은 상륙계획 자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였으나, 상륙지역을 인천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완강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주로 미 육군참모총장 콜린스 대장, 해군참모총장 셔먼 대장, 그리고 미 해병대의 대표는 초기단계에서부터 반대의견을 제시하였다. 반대 이유는 인천지역이 조수, 수로, 해안조건에서 상륙작전에 많은 제한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상륙의 적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즉 인천항에 이르는 수로가 협소하고 간만의 차이도 10m 내외로 간조시 2∼5㎞의 광대한 갯벌지대가 형성되며 또 수심이 너무 얕다는 것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인천에 상륙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적은 그의 후방을 무시하고 있고, 병참선이 과도하게 신장되어 있으므로 서울에서 신속히 이를 차단할 수 있으며, 그들의 전투부대는 사실상 모두 낙동강 일대의 제8군 정면에 투입되어 있는데 훈련된 예비 병력마저 없어 전세를 회복할 만한 능력이 거의 없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전략적, 정치적, 심리적 이유를 들어 서울을 신속히 탈환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때 그는 지도를 가리키면서 인천은 제8군이라는 ‘망치’가 북한군을 분쇄하는데 제10군단은 ‘모루’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결국 맥아더 장군은 국방장관과 대통령의 지지를 얻어냈으며, 미 합참은 8월 28일 인천상륙작전 계획을 공식 승인하였고, 맥아더 장군은 상륙작전 날짜를 최종 9월 15일로 확정하였다.

 

인천상륙작전 시 아군의 손실은 인천으로부터 서울에 이르는 동안 가장 결렬한 전투를 치렀던 미 제1해병사단이 전사 415명, 부상 2029명, 실종 6명으로 가장 많은 손실을 보았으며, 그 다음으로 한국 해병대가 전사 97명, 부상 300여 명, 그리고 실종 16명이었다. 미 제7사단중의 제32연대도 전사 66명, 부상 272명, 그리고 실종이 47명이었다. 따라서 국군과 유엔군의 총 손실은 대체로 약 4천여 명 정도였다. 반면 북한군은 사망이 1만4천여 명, 포로 7천여 명, 전차 손실 50여 대에 달하였다. 이 작전 이후 북한군은 공격능력이 소멸되고 저항능력마저 거의 상실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은 야심적인 작전계획의 수립과 신속한 준비과정, 그리고 과감한 작전 수행 등으로 요약되는 작전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제반 악조건을 기습달성의 수단으로 이용하여 상륙작전을 성공시킴으로써 작전 수행상 악조건이 때로는 중요한 요소로서 역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입증하였다. 인천상륙작전에 반대의 입장이었던 브래들리 합참의장은 작전의 성공보고를 받은 후 맥아더 장군에게 축전을 보내어 “귀관이 수립한 공세이전 계획, 시기의 선택, 그리고 그 실행은 참으로 훌륭하였다”고 극찬하였다. 인천상륙자전의 성공확률이 5만분 1일이라는 의견속에 맥아더 장군의 훌륭한 리더와 전쟁원칙이 적절히 반영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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