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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겨울나무처럼

 

지난밤에 찬비가 내리더니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출근길을 달리는 자동차가 온통 빨간 단풍잎에 덮여 있다. 자세히 보니 그런 자동차가 몇 대나 지나가는 것이다. 어떤 차는 노란 은행잎을 뒤집어쓴 채 달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단풍잎 자동차와 은행잎 자동차이다. 그 잎을 미처 털어내지 못한 운전자가 왜 그런지 멋지게 보인다. 아마도 단풍나무 아래 세워둔 자동차에 잎이 떨어지며 물기로 착 달라붙었나 보다. 아침 길에 자동차 몇 대가 지나가며 보여준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동안 빛 고운 단풍을 자랑하더니 이제는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나무를 본다. 나무가 많은 곳에선 나뭇잎이 떨어질 때 낙엽 쓸기가 큰일이다. 날마다 경비 아저씨는 낙엽을 쓸고 계셨다. 집 밖을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경비 아저씨의 낙엽 쓰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나는 음료수를 건네며 “아저씨! 힘드시겠어요? 빨리 나뭇잎이 다 떨어지면 좋겠네요.” 아저씨는 “그냥 쓸다 보면 다 떨어질 때가 있겠지요.” 하신다. 연세 드신 분이 열심히 낙엽을 쓸며 말씀도 모든 것을 달관하신듯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경비 아저씨는 낙엽과 씨름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날씨가 추워진다. 그동안 나무는 찬바람에 나뭇잎을 다 떨구고 빈 몸으로 서 있는 것이다.

 

무소유를 강조했던 법정 스님이 열반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정신적 유산은 남아 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필요해서 물건을 가지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불일암을 지키는 맏상좌 덕조 스님은 “큰스님께서 멀리 출타하셨다가 돌아오신다는 전갈을 받으면 그 오솔길을 빗자루로 다 쓸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큰스님을 모셨어요. 그래서 빗자루질 하는데 도사가 다 됐답니다. 어느 처사님이 저에게 ‘시청에서 근무했어요?’라고 하시기에 무슨 말인가 했더니, 속가에서 청소부였느냐고 농담을 하셨던 겁니다.”

 

낙엽을 묵묵히 쓸던 경비 아저씨나 덕조 스님이나 빗자루질은 모두가 마음을 닦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잎을 다 떨군 나무를 보며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신 법정 스님을 생각한다.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법정, <물소리 바람소리> 부분

 

찬 바람이 불면 나무들은 잎새를 내려놓는다. 우리에게 욕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몸짓이다. 자연의 순리를 가르쳐 주려는 것이다. 숨 가쁘게 살아가는 인간에게 자연의 이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잎을 다 떨군 나무를 보며 비움의 철학을 배운다. 한 번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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