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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추진, 비난만 사는 이유

산안법 한계, 거여 정국 속 중재법 촉구 커져
재계 강력 반발 “가혹한 중벌, 연좌제 부과”
여론 반발, 4월 재보궐 코앞...원안 크게 후퇴
의석 과반 밀어붙여도, 수위 낮춰도 ‘진퇴양난’

 

여당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재법) 추진이 여론의 비난만 사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의 한계로 중재법 제정 촉구가 계속됐음에도, 재계 반대와 여론을 의식해 법안 수위를 후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중재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 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 강력히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017년 발의한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그 시작으로 한다. 중대재해 책임이 있는 사업주에 3년 이상의 징역 및 10배의 손해배상 부과 등 기업에 엄중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주된 골자이었다.

 

중재법 제정을 위한 20대 국회의 입법 시도는 ‘동물·식물 국회’ 사태 등 각종 정쟁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하지만 21대 국회가 거여 정국으로 개편되면서 중재법 제정의 필요성이 다시금 제기됐다.

 

중재법의 제정 당위성은 중대재해에 대한 기존 산안법의 한계로 힘을 얻고 있다. 법규 의무 준수 대상자를 법인에만 한하고, 사업주는 안전보건 규정 위반의 경우에만 처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18년 故 김용균 사망사고로 산안법이 제정됐음에도 산재 책임을 가진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미약해 ‘개정된 산안법은 계속되는 노동자 사망사고를 막지 못하는 법’이란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중재법은 사업주에게도 산재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어 산재 예방 효과를 내는 등, 산안법보다 강력한 처벌 조항을 담고 있다. 현재 국회 상임위에 올라와있는 대표적인 중재법 제정안은 2가지로 강은미 정의당 의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법안이다.

 

두 법안 모두 법인에 대해 최대 20억원의 벌금, 안전의무를 소홀히 했을 경우 매출액 10% 이하의 벌금을 가중토록 한다. 반면 강 의원 법안이 중대재해 책임이 있는 사업주·경영자에 대해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최대 10억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반면, 박 의원의 법안은 2년 이상 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 일부가 완화돼있다.

 

특히 박 의원 법안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4년 유예한다’는 부칙을 달아 정의당 등 노동계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중소기업 사업장에서 산재사고가 대부분 일어남에도 여론 반발을 의식해 ‘반쪽자리 법안’으로 간다는 비판인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법안에 여당 의원 138명이 서명한 반면 박 의원의 중재법 제정안은 45명에 그쳐, 중재법에 대한 여당의 진정성까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4일 원안보다 대폭 완화된 중재법 제정안을 내놔 여당은 정의당 등 노동계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사업주의 안전·보건 ‘의무’를 ‘조치’로 바꾸고 책임 공무원 처벌 수위도 3억원 이하 벌금에서 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수정하는 등 대폭 완화된 법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는 중재법 원안에 대한 재계 전반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6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30개 경제단체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며 중재법 제정중단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동 성명서를 통해 “헌법·형법을 위배하면서 경영 책임자와 원청에 가혹한 중벌을 부과하려한다”며 “인과관계증명 없이 중벌을 부과하는 것은 공동연대 처벌을 가하는 연좌제와 같다”며 이미 한국의 산안법 내 기업 처벌이 미국·독일 등 해외보다 더 엄격하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여당은 자당 정치인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로 서울·부산 시장 재보선의 책임까지 지고 있다. 당헌 개정까지 동원하며 다음해 4월 재보선 승리를 서두르고 있기에, 여당으로선 의석 과반수를 이용한 법안 밀어붙이기는 주요 정치적 이벤트의 변수로 되돌려 받을 부담까지 져야 한다. 원안대로 나아가도, 후퇴시킨 수정안으로 밀어 붙여도 둘 모두 반발만 사는 진퇴양난의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일부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영국은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을 제정해 기업, 공공기관, 조합, 경영자협회 등 단체가 안전조치 미비로 근로자 사망사고를 낼 경우 형사책임을 강하게 묻고 있다. 이보다 앞서 2003년엔 캐나다의 ‘기업책임법(Corporate Responsibility Legislation)’, 호주의 ‘산업살인법(Crimes(Industrial Manslaughter) Amendment Act)’이란 법이 제정됐다.

 

여당의 중재법 추진이 졸속 입법 비판을 받을지라도 법안 통과를 원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살아있다. 故 김용균 씨의 모친인 김미숙 김용균 재단 이사장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 속에도 중재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씨는 “다른 용균이들의 죽음을 막고 싶다. 중재법만은 빨리 만드는 것만큼 온전히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 경기신문 = 현지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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