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일 중 단 하루, 7월 9일이 비어진 달력이 있다. 아마도 이 달력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달력일 것 같다.
남양주시 조안면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제작된 2021년도 탁상용 ‘7월 9일이 비워진 달력’이다.
7월 9일은 45년전인 1975년, 수도권에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안 지역 84%가 팔당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인 날이다.
이 달력은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격인 첫장에는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7월 9일」이란 타이틀 아래 ‘7월 9일이 비워진 달력’이란 부제가 달려 있으며,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버린 아픈 날을 상기 시키고 있다.
이어, ‘조안의 시계는 거꾸로 갑니다’라는 부제를 통해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제약 속에 살아오고 있는 조안 주민들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희망을 담고 있다.
특히, 각 월별 장에 실린 주민들의 사진에는 ‘시간이 멈춘 조안’ 또는 ‘조안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는 것을 상징하듯 벽걸이 시계를 거꾸로 든 주민들이 저마다 소망을 담고 있는 모습이 실렸다.
1월달 모델로 나선 이대용님(59)은 “반세기 동안 변한 게 없는 조안, 아픈 세월이 야속합니다.” 3월 모델인 이주아 어린이(9)는 “졸업식날 엄마 아빠와 짜장면을 먹고 싶어요.”라고 호소했다.

6월 모델인 청년 이도경님(24)은 “죽어가는 조안을 다시 살려 주십시오.”라고 호소하고 있고, 7월 9일이 비어 있는 7월달 모델인 유문희 할머니(92)는 “인생의 절반, 45년이 거꾸로 흘렀습니다”라는 문구위에 시계를 거꾸로 들고 툇마루에 앉아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11월 모델인 김정임(64), 장복순(59)님은 “언제쯤 김치도 판매할 수 있을런지요”라며 청정지역 배추로 김치를 만들어도 판매장조차 운영할 수 없음을 호소했다. 그리고 12월 모델인 78세의 유재풍님은 “조안이 바뀌는 거 내년에는 기대해 볼랍니다.”라고 소망하고 있다. 이처럼 이 달력에는 45년동안 각종 규제속에 살아 온 이곳 주민들의 아픔과 소망이 녹아 있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이같은 조안 주민들의 아픔을 들어 주기 위해 지난 10월 27일 조안면 주민 3명과 남양주시가 함께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하도록 제안했고, 헌법재판소는 이 건을 지난 11월 25일 전원재판부에 본격적으로 심리하는 본안회부 결정을 내린 과정까지 왔다.
남양주시 임홍식 홍보기획관은 “팔당상수원보호구역 규제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중앙정부의 각 부처 등에 관련 자료와 함께 이 달력을 보내 주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전할 계획으로 기획하여 주민들의 참여속에 제작했다”고 밝혔다.
[ 경기신문/ 남양주 = 이화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