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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5.74㎞에 달하는 화성 순례길…시화집으로 만나다

김훈동 시인, '수원 華城의 숨결-시와 그림으로 빚다'
화성 곳곳에 어린 정조의 노력과 생각, 애민정신
정조가 되살아나 감회를 읊는 듯한 뭉클한 감동

한양 숭례문보다 더 큰 장안문이여/삼남(三南)을 가는 웅부(雄府)에/백성들의 안녕을 바라는/정조의 마음이 담긴/조선 제일의 큰문이 열렸습니다.
만년(萬年)의 편안함/길이 누린다는 열망이/누각 용마루에/고스란히 내려앉았습니다.

 

시화집, '수원 華城의 숨결-시와 그림으로 빚다'의 첫 번째 시는 이러한 내용의 '장안문(長安門)'이란 작품으로 시작된다.

 

 

'수원' 하면 화성이고, '화성'하면 정조를 떠올리는 건 으레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기에, 어쩌면 특별할 것 없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엔 저자가 공부하며 깨달은 나름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저자인 김훈동 시인은 "장안문은 정조대왕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건축물이다. 100년 전에도 할까 말까 했던 기술을 18세기에 성공시킨 건축물이기도 하다"며, "장안문은 정조의 상징이다. 양쪽에 수문장이나 적대가 지키고 있고, 망을 보면서 화살을 당기는 노대와 포루 등이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장안문만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화성의 안과 밖, 건축물 하나 하나의 면면을 정말 꼼꼼히도 살핀 흔적이 역력하다. 또 화성 곳곳에 어린 정조의 노력과 생각, 애민정신까지 읽어내기 위한 저자의 고된 여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어느 지점에선 마치 정조가 되살아나 감회를 읊고 있는 듯한 환영을 마주하게 되면서, 가슴 깊숙이서 올라오는 뭉클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책 속에는 5.74㎞에 달하는 화성 전체의 모습이 절절한 시와 함께 수록돼 있다. 4대문을 비롯해 암문, 수문, 장대, 공심돈, 치성 등 58개 건축물을 총 망라해 담은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정조와 관련한 책 20여 권을 섭렵했음은 물론 날이면 날마다 수원화성을 돌고 또 돌았다. 책을 완성하기 위한 그의 열정 앞에 77세란 나이는 전혀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여름에 물 한병 들고 도는데 한 2시간 반 걸려요. 안으로 한 50번, 밖으로 한 50번. 최소한 100번은 넘게 그 길을 걸었을 겁니다." 이에 고생이 많았겠다고 하자, "말도 마세요. 가시덤불에 찔리고 넘어지고. 지지대 고개 비각을 올라갈 땐 정말 힘들었어요. 마지막엔 손잡이도 없는데 경사가 엄청 심하더라고요. (내가) 해병대 출신인데도 어지러워서 중간에 주저 앉았을 정도입니다."(웃음) 

 

저자가 이렇듯 험한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미려(美麗)함이 적에게 두려움을 준다"는 정조의 어록에서 기인했다. 이 말은 즉, 겉모양을 아름답게 하는 것도 적을 방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뜻이고, 화성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적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을 꼽으라면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그 하나는 바로 그림이다. 사진이 아닌 어반스케치로 묘사된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이 멋있게 표현돼 있어 그렇기도 하지만, 뭔가 색다른 볼거리를 선물해주기 때문이다. 

 

장안문에서 시작된 성곽이 실제 위치와 순서에 따라 이어지도록 그려졌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독자의 입장에선 재미있고 고마운 일이지만, 그림을 그린 이성락 화백이 얼마나 애쓰고 고생했을지 짐작이 되고 보니 왠지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또 한 가지는 정조의 시를 자신의 필체로 써내려간, 위정 김재옥 서예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명필이 따로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멋진 글씨를 감상하는 맛도 쏠쏠한 재미로 다가온다.

 

 

저자는 강조한다. 소크라테스가 서양 철학의 문을 열고, 공자가 동양 철학의 길을 열었듯, 수원이라는 도시의 문을 연 주인공은 정조대왕이라고. 그러니 정조를 모르고, 정조의 분신인 화성의 건물에 깃든 숨은 뜻을 읽지 않고서는 수원의 문화를 얘기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을 완결편이라 보지 않는다.

 

날씨가 조금 풀리고 화창할 때, 이 책 한 권 들고 수원화성 성곽을 따라 걸어보면 어떨까 싶다. 시 한 편의 감성이 자연스럽게 발길을 잡는 곳에 멈춰서고, 그 시절 정조와 교감을 시도해보면 좋을 듯하다.

 

[ 경기신문 = 강경묵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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