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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는 숫자 ‘3’‥ 조선왕릉 동구릉, 비밀의 문을 열다

구리시 문화해설가 한철수씨가 이야기하는 세계문화유산 ‘동구릉’

 

작년 1월 발생한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은 멈추고 생활은 제한되고 문화생활과 여행마저도 어려운 현실이다. 지금은 5인 이상 집합금지의 영향으로 실내 전시관조차 문을 닫아 답답함을 호소하지만 동구릉을 포함한 조선왕릉은 많은 제한에서 조금은 자유롭다

 

2009년 6월 27일 새벽 2시 29분 스페인의 세빌리야에서 날아온 반가운 소식을 YTN이 전했다. 밤잠을 설치며 뉴스를 기다렸던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흥분된다. 12년 전 이 소식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세계유산에 대한 관심을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선 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당시 서울, 경기, 강원 등 13개 시군구에 흩어져 있는 조선왕릉을 보유하고 있는 곳에서는 축하의 현수막을 내걸고 방송사 등 언론에서는 앞을 다투어 특집으로 꾸며 많은 홍보를 했다.

 

동구릉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다. 약 60만평의 너른 숲에는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누어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 1408년 자리를 잡으므로 613년 넘도록 잘 보전된 숲에서 새소리, 바람소리,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따라 역사와 자연을 만나기 좋은 곳이다.

 

이러한 동구릉을 숫자 ‘3’을 통해 살펴봤다.

 

 

동구릉에는 홀로 있는 왕릉이 셋이다

단릉은 태조의 건원릉, 쌍릉은 정종의 후릉(厚陵), 합장릉은 세종의 영릉(英陵), 동원이강릉은 세조의 광릉(光陵)으로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다.

이후 동원상하릉은 효종의 영릉(寧陵), 삼연릉은 헌종의 경릉(景陵)은 변형된 모습이다.

동구릉에는 동원상하릉을 제외한 모든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건원릉·휘릉(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혜릉(제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 심씨) 왕과 왕비가 홀로 있는 쓸쓸해 보이는 왕릉이 셋이 있다.

 

 

동구릉에는 황제로 추존된 왕릉이 셋이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환구단에서 황복(皇服)을 입고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그리고 전례에 따라 4대 선대왕인 익종, 순조, 정종, 장종을 황제로 올려 문조익황제, 순조숙황제, 정조선황제, 장조의황제로 태조를 시조(始祖)로 삼아 태조고황제로 추존한다.

이어 순종효황제는 진종, 헌종, 철종을 진종소황제, 헌종성황제, 철종장황제로 올린다. 그래서 대한제국에는 추존황제 8명, 황제 2명 등 10명의 황제가 있다.

동구릉에는 태조고황제, 헌종성황제, 문조익황제 대한제국의 황제 능이 셋이나 있다.

 

 

동구릉에는 보물로 지정된 정자각이 셋이다

조선왕릉은 왕이 죽어 마지막으로 머무는 궁이다. 그래서 왕이 묻힌 무덤방을 현궁(玄宮)이라한다. 그리고 때에 따라 왕은 왕릉으로 거둥을 해 제사를 지낸다. 왕릉의 제사를 제향(祭享)이라 부르고 제를 지내는 제각을 정자각이라 부른다. 정자각에 오르기 위해서는 홍살문 앞에 길게 뻗은 돌길을 통해야 한다. 돌길은 높낮이가 다른데 높은 길은 향과 축이 지나가는 길이라 향로(香路)라 하고 낮은 길은 왕이 제사를 지내려 걷는 길이라 어로(御路)라 한다. 세계유산에 등재한 우리나라 40개의 왕릉에는 정자각이 있다. 그중 동구릉의 원릉, 목릉, 숭릉 3기의 정자각이 보물로 지정됐다.

 

동구릉에는 2기 이상의 비석이 있는 왕릉이 셋이다

동구릉에는 신도비와 황제로 올린 추숭비가 있는 건원릉, 고종이 친히 글씨를 쓴 문조익황제의 수릉(綏陵)에는 2기가, 정조와 고종의 어필이 있는 원릉에는 3기의 비석이 서있다. 왕들의 글씨를 살필 수 있는 왕릉이 셋이 있다.

 

 

동구릉에는 홍살문 화살대가 11개인 능이 셋이다

동구릉에는 홍살문 살대가 11개인 왕릉이 셋이다. 왕릉의 대문인 홍살문의 살대는 태극문양의 창을 포함해 9개지만 11개인 경우가 더러 있는데 동구릉에는 휘릉·혜릉·경릉 홍살문이 그렇다.

홍살문의 붉은 색은 나쁜 기운을 막으라는 동짓날 팥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살대를 홀수 9개로 두는 것은 양수 중의 완전수가 9이기 때문이다.

 

 

동구릉에는 병풍석을 두른 왕릉이 셋이다

태조의 건원릉은 고려 공민왕릉을 표본으로 삼았다. 하륜이 터를 잡고 선공감 박자청이 디자인을 하고 군정 6000명이 동원을 해 완성을 했다.

건원릉의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12면에 아름다운 조각을 한 돌을 둘렀다. 이를 병풍석이라고 한다. 하지만 세조는 무덤방을 돌방(석실)에서 회다지방(회격실)으로 바꾸고 병풍석을 비롯한 큰 돌의 사용을 금한다. 하지만 이 세 왕릉은 무너져 내리는 사고 잦자 성종부터 효종의 (구) 영릉(동구릉 원릉자리)까지는 왕의 능에 병풍석을 돌린다.

동구릉에는 태조의 건원릉, 문종의 현릉, 선조의 목릉에는 아름다운 병풍석이 있다.

 

 

 

동구릉에는 밖에서 이사 온 능이 셋이다

조선 왕릉은 필요에 따라 옮긴 왕릉이 많다. 기록에는 전체 13번이 나오는데, 동구릉에서 여주로 이사를 간 효종의 영릉, 용마산 아래 구의동에서 이사를 온 문조익황제의 수릉(綏陵), 문종의 비 현덕왕후는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 소릉에서 현릉 문종의 곁으로 이사를 왔다. 동구릉 경릉에서 목릉으로 관내 이동한 선조의 능도 있다. 동구릉에는 밖에서 이사 온 왕릉이 셋이다.

 

 

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이 되다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서울 경기, 강원 등 수도권일대에 산재해 있는 조선왕릉 40기가 한꺼번에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600년 동안 온전히 보존돼 온 조선 왕릉의 문화적 가치를 세계가 인정한 것입니다.”

 

세계인들은 “첫째, 한 왕조가 518년을 이은 것도 대단한데 왕과 왕비는 물론 후궁·왕자·공주 등 왕실의 무덤이 남아있는 사례를 보지 못했다. 둘째, 유교와 풍수·도교·전통사상 등 한국인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장례문화 공간인 조선왕릉은 독특한 건축과 조영 양식으로 ‘신(神)의 정원’으로 부르기에 충분하다. 셋째, 조선이란 나라가 문을 닫은 지 100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후손들이 제례를 치르는 것은 조선왕릉 밖에 없다.”고 조선왕릉을 극찬했다.

 

 

[ 정리 = 장학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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