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3 (토)

  • 구름조금동두천 9.6℃
  • 흐림강릉 7.8℃
  • 구름조금서울 11.5℃
  • 구름많음대전 10.8℃
  • 구름조금대구 12.3℃
  • 구름많음울산 11.9℃
  • 맑음광주 10.8℃
  • 맑음부산 15.7℃
  • 맑음고창 11.2℃
  • 흐림제주 12.1℃
  • 맑음강화 10.3℃
  • 구름조금보은 10.7℃
  • 구름조금금산 10.3℃
  • 맑음강진군 12.4℃
  • 흐림경주시 10.5℃
  • 구름조금거제 13.0℃
기상청 제공

“5인 이상 집합금지? 마음만은 금지 못 해”…이른바 ‘랜선 명절’ 진풍경

정부의 집합금지 조치·자발적 이동 제한으로 설 연휴 이동량 '감소'
'코로나19로 인한 집합금지', 가족 향한 마음은 막지 못 해
국민들, 음성·영상통화 등으로 만남 대체…"못 보니까 더 보고싶어"
전문가 "집합금지로 가족 관계가 더 강화되는 측면이 있기도 해"

 

#. 홀로 상경해 학교를 다니며 취업을 준비해오던 A(20대)씨는 설날만을 기다려 왔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떳떳하게 가족들 앞에서 직접 공개하고 싶은 마음에 지금껏 취업 소식을 꽁꽁 숨겨 왔다. 그러나 이게 웬 말인가, 집합금지란다. 게다가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상황. 형편이 이렇다 보니 A씨는 차마 고향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었다. 승차권 예매가 아닌 통화를 위해서다.

“엄마, 아빠. 이번에는 못 갈 것 같아요. 죄송해요. 저 사실 취업했어요. 직접 뵙고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코로나가 원망스럽네요”. 그래도 막상 영상통화로 부모님의 얼굴을 보니 한시름 놓았다. 그렇게 간단한 안부를 나누는 정도의 통화를 마치고 A씨는 조촐한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엄마 손맛이 듬뿍 들어간 푸짐한 식탁 앞에 앉아 있어야 할 A씨지만, 어쩌겠나. 시국이 이런걸. 대충 끼니를 때우고 그는 다시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나 할 말이 많았는지, 끊을 기미가 안 보였다. 그렇게 A씨는 부모님과의 통화로 밤을 지새우다 하루를 다 보냈다.

 

꽉 조여 맨 긴장의 끈을 풀어 헤치는 날. 치열한 일상을 잠시 뒤로하는 날. 잠시 가족들에 기대 모처럼의 풍요와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날. 바로 설날이다.

 

그런 설날이 2021년에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우릴 반겼다. 코로나19로 인해 내려진 조치인 설 명절 5인 이상 집합금지 대상에 직계가족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이 같은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한껏 들뜬 사람들의 발걸음이 꼼짝없이 묶여버렸다. 집합금지 조치가 아니더라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고향으로 향하려는 이들을 붙잡았다.

 

 

실제로 11일 한국도로공사와 코레일 등에 따르면, 올해 설 연휴 승차권 예매 실적은 전년 설 대비 64%가량 감소했다. 지난 추석과 비교해봐도 85%나 줄었다.

 

고속도로 통행량도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올해 설 연휴 전국 고속도로 예상 교통량은 378만대다. 작년 예상 교통량인 469만대에 비하면 100만대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시간대로 비교해 봐도 설 연휴 첫날 오후 3시 기준 작년은 275만대가 통과한 데 비해 올해에는 216만대가 통과했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코로나19와 집합금지의 영향 탓인지 작년 설보다는 교통량이 감소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정부의 집합금지 조치와 사람들의 자발적인 이동 제한 방침 덕에 설 연휴 이동량은 큰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우리네의 가족을 향한 마음은 조금도 ‘집합금지’되지 못 했다.

 

그간 명절에 비하면 지극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가족과 함께했다.

 

‘랜선 명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차키나 승차권 대신 휴대전화를 손에 쥐었다.

 

직접 부둥켜안을 수는 없어도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가족들의 음성이, 화면 속에 비친 얼굴이 잠시나마 사람들의 아쉬운 마음을 위로해줬다.

 

 

A씨는 “항상 명절에 모이던 가족들이 못 모이게 되니까 너무 아쉬워 통화로 위안 삼고 있다”며 “보고 싶은데 못 보니까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전했다.

 

고시준비생 B(30대)씨도 “안 그래도 못 보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더 못 보게 되니까 듣기 싫던 가족들의 잔소리가 그리워지기까지 한다”며 “굳이 잔소리 들으려고 전화를 붙잡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는 이 같은 행동은 필연적이며 집합금지 조치가 내려진 현 상황이 오히려 가족 간의 애정이 더 깊어지게 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접 대면을 못 하는 대신 제한적으로라도 계속 관계를 유지해나가려는 사람들의 행동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객관적인 실태가 아니고, 주관적인 인식”이라며 “현 상황을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보완하느냐에 따라 관계에 긍·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집합금지로 인해) 오히려 선물 물량이 늘어나는 등 가족 관계가 더 강화되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 경기신문 = 김기현 기자 ]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