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에 이은 사극, '동주'에 이은 흑백영화다. 이준익 감독의 14번째 영화 '자산어보'는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과 청년 어부 창대의 이야기다.
영화는 역사적 실존 인물인 실학자 정약전이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쓰는 데 도움을 줬다고 서문에 언급한 창대를 상상력으로 살려냈다.
25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이준익 감독은 "정약전이라는 인물에 꽂혀 개인의 근대성을 자산어보를 통해 영화로 담으면 재밌겠다 싶었다"며 "내가 보고 싶어서 찍은 영화"라고 소개했다.
이 감독은 "역사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잘 모르니까 궁금해서 호기심을 따라가다 보니 못 나오고 '역덕'(역사 덕후)이 됐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감독은 윤동주 옆의 정몽규(영화 '동주'), 박열 옆의 후미코(영화 '박열')에 이어 정약용 옆의 정약전과 그 옆의 창대라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함께 그려냈다.
그는 "시대의 인물을 그릴 때는 보통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고 저도 그랬다"며 "반대로 유명하지 않지만 같은 시대를 버티고 이겨낸 사소한 개인의 모습과 주변을 그리다 보면 그 안에 내가 있고, 나의 마음이 담긴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을 통해 시대의 진정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고도 했다.
'자산어보'는 '동주'에 이어 다시 한번 흑백 영화로 촬영한 작품이다.
이 감독은 "'동주'의 적잖은 성과로 큰 자신감이 생겼다"며 '동주'와 '자산어보'는 정반대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동주'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공기를 담으며 백보다는 흑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면,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만난 새로운 세상,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로 백이 더 큰 영화로 선명하게 구별되는 걸 찍으면서 알았죠."
정약전 역을 맡은 설경구에게는 첫 사극이다.
설경구는 "사극은 전에도 몇 번 제안을 받았는데 용기가 안 나서 다음에 하자 한 게 지금까지 왔다"며 "나이 들어서 이준익 감독과 하게 돼 다행이다 싶다"고 했다.
그는 "자유로운 사상을 가졌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인물이 흑산도에 들어가서 거친 민초들과 섞이면서 오히려 가르침을 받고 실천을 하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며 "정약전이라는 이름을 배역 이름으로 쓰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나도 이야기에 묻히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어릴 적 할아버지랑 10년 정도 같은 방을 쓴 적이 있는데 할아버지가 선비 정신이 있는 분이었다. 설경구가 정약전으로 분장을 하고 나오면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 같았고, 그게 가장 큰 감동이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서문에 이름 석 자 나오는 창대를 연기한 변요한에 대해서도 "시나리오에 없는 절반을 채워서 온전한 캐릭터로 만들어줬다"고 칭찬했다.
2019년 가을 촬영을 마쳤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개봉을 연기해 온 '자산어보'는 다음 달 31일 개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