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100번이라도 걸겠다”고 밝히며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설치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야권에서는 윤 총장 옹호 물결이 일고 있는 반면, 그간 검찰개혁을 추진해왔던 여권 인사들과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공직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유독 크다. 이와 함께 ‘직을 걸겠다’는 미명하에 은근슬쩍 대권가도에 시동을 거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 尹, “수사청 설립은 법치 말살, 헌법 정신 파괴…직 100번이라도 걸겠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2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설립이 “단순히 검찰 조직이 아니라 70여년 형사사법 시스템을 파괴하는 졸속 입법이고,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법치를 말살하는 것이며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라며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100번이라도 걸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직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판단해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윤 총장은 “내가 검찰주의자라서 검찰이 무언가를 독점해야 한다고 여겨서 수사·기소 분리와 직접수사권 폐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사법 선진국 어디에도 검찰을 해체해 수사를 못하게 하는 입법례를 찾아볼 수 없다. 반대로 형사사법 시스템이 무너진 중남미 국가들에서는 부패한 권력이 얼마나 국민을 힘들게 하는지, 우리 모두가 똑똑히 봤다”고 강조했다.
‘국회와 접촉면을 넓히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질문엔 “검찰이 밉고, 검찰총장이 미워서 추진되는 일을 무슨 재주로 대응하겠나”라며 “검찰이 필요하다면 국회에 가서 설명을 하기도 하지만 국회와 접촉면을 넓힌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라고 했다.
윤 총장은 또 수사·기소 완전 분리가 추진되면 형사사법 시스템의 붕괴 및 반부패수사 역량 저하를 불러와 국민들의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알리며 국민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국민들께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국민 여러분의 이해와 관계되는 중요한 사안이다”며 “그저 합당한 사회적 실험 결과의 제시, 형사사법 제도라는 것은 한 번 잘못 디자인되면 국가 자체가 흔들리고 국민 전체가 고통받게 된다”고 호소했다.
◇ 나경원·안철수 등 야권, 윤 총장 ‘옹호’
윤 총장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나경원 국민의힘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 총장의 외침, 외면해선 안 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나 예비후보는 “문재인 정권의 ‘검찰 죽이기’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윤석열 총장이 국민들에게 절실한 호소를 보내왔다”라며 “외면해서는 안 될 절박한 외침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권이 자신들의 비리와 부패를 감추려, ‘검찰 무력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겉으로는 ‘검찰권력 견제’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지만, 실상은 수사 기능 자체를 쪼개고 약화시켜서 정권을 향한 수사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속셈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의 권한 남용, 당연히 막아야 한다. 검찰개혁도 분명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숙제다”며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절대권력의 문재인 정권, 민주당 정권을 탄생시키는 더 큰 패착을 둬선 안 된다. 자칫 법치의 기본이 무너지고, 민주주의 자체가 쓰러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총장의 인터뷰 기사를 공유하며 “검찰 수사권 폐지로 형사사법체계가 무너지면 부패가 창궐할 거라는 윤석열 총장의 호소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전했다.
◇ 최강욱·조국 등 여권 인사 尹 향해 ‘일침’
이와 달리 여권 인사들은 윤 총장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정부·여당과 함께 검찰개혁을 앞장서서 외쳤던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은 “다시 이어지는 공무원의 정치행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노무현 정부 시절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문화하면 ‘법치’가 붕괴된다고 했으나 명문화 이후 붕괴되지 않았다”며 “공수처 설치하면 ‘법치’가 무너진다고 했으나 무너지지 않았다”고 윤 총장의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그러면서 “‘법치’는 검찰이 통치하는 ‘검치’(檢治)가 아니다”라며 “검찰의 직접수사권 보유는 예외적인데 이를 외면하고 ‘법치’로 포장된 ‘검치’를 주장하면 검찰은 멸종된 ‘검치’(劍齒) 호랑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이날 코끼리를 의인화하며 검찰개혁에 대한 변함없는 의지를 드러냈다.
추 전 장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커다란 검은 점을 지닌 코끼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며 “진짜 코끼리가 검다! 방금 내 눈으로 보았네. 뭐? 거짓말 마, 코끼리는 희다! 사람들끼리 언쟁이 붙었다”고 남겼다.
이어 “큰 귀를 너울거리며 코끼리는 뚜벅뚜벅 앞만 보고 지나갔다. 그러자 귓등으로 들리는 소리. 코끼리가 너무 빠르다! 이상한 놈인가봐!”라며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67년 서커스단을 따라 해외문물을 다 봐 온 코끼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소란을 뒤로하고 코끼리 걸음 그대로 묵묵히 지나갔다”고 덧붙였다.
추 전 장관이 갑자기 코끼리를 언급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한 여권 관계자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립을 두고 검찰과 야당이 반발하는 가운데 검찰개혁의 큰 뜻을 위해 코끼리처럼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다짐을 담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 “대권 도전하기 위한 핑계…정치적 중립은?”…네티즌 비판 ‘봇물’
이와 함께 네티즌들의 비판도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공무원 신분인 윤 총장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대권행보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한 네티즌은 “(윤 총장은) 공무원의 정치활동 금지의무를 위반했다”고 댓글을 달았다.
다른 네티즌은 “그리 정치하고 싶으면 사표 내고 나와서 떳떳하게 하지, 꼼수로 참...”이라며 “그 집 장모와 아내는 어째 조용하네”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윤석열, 개혁하기 싫으면 정치권으로 나와. 뭘 망설여. 아니면 말 잘 듣던지! 검찰개혁 찬성을 원하는 국민을 뭘로 보고”라는 의견과 “국회 입법 사항이고, 권한인데 일개 행정부처 공무원이 나서네. 뭐 법안 통과되고 나서 정 억울하면 헌재에 위헌 소송 내시던가, 사표 쓰면 고맙지”라는 등의 의견을 게재했다.
[ 경기신문 = 김기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