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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착한 영화는 착한 세상을 만든다

⑫ 타인의 친절 - 론 쉐르픽

세상에 못된 영화는 없다. 모두들 착한 영화이다. 못되 보이는 척, 사실은 그런 영화도 착하게 끝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선(善)을 지향하며 악당이 주인공이고 악이 승리하는 결말이어도 결국엔 그 지독한 현실을 벗어나자는 취지를 갖고 있어서 궁극적으로는 그것 역시 착한 영화가 된다.

 

극장가 한 편에서 조용히 개봉돼 상영 중인 (이 영화의 누적 관객 수는 현재 3000명이 되지 못했다) 론 쉐르픽 감독의 신작 ‘타인의 친절’은 처음부터 끝까지 ‘착해 빠진’ 영화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하다가도,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여전히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영화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이에 배려와 친절이 사라진 지 오래다. 사회적 에티켓, 애티듀드(attitude)라고 규범화 돼있는 것도 역설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문을 닫게 하는 장벽 역할을 하게 한다. ‘여기까지만’ 들어와, 더 이상 깊이는 안돼 라는 식이다. 때문에 진심으로 상대에게 친절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더 나아가 상대의 친절을 알아채고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타인의 친절’은 바로 친절의 생리, 그 변증의 성찰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그런 것 다 필요 없다. 영화는 보는 내내 마음을 쿵쾅거리게 한다. 예수가 살아 있었다면 다시 재림하기를 욕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저 아이들을 어쩌누, 저 인간들을 어쩌누 하며 혀를 끌끌 차면서, 차마 그의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런 예수의 마음이 읽혀지는 영화다.

 

세상은 너무 살기가 어렵고 살아내기가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마음과 힘을 기울여 서로가 연대하면 이겨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제도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종교도 아니다. 종교적인 것(마음)이 꼭 종교는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행동이며 인간적인 무엇이다. 결국 모든 것은 인간주의로 돌아간다. 세상은 인간이 바꾼다. 인간이 인간이 될 때 세상은 비로소 바뀌어진다.

 

 

영화의 시작은 클라라라는 여인(조 카잔)이 아들 둘을 데리고 가출을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클라라는 아이와 함께 뉴욕으로 온다. 이들 셋은 폭력을 휘두르는 가장으로부터 피신한 상태다. 클라라 모자들의 곤궁한 뉴욕 삶은 여러 일상과 부딪히고 섞인다.

 

간호사 앨리스(안드레아 라이즈보로)가 다니는 러시아 식당은 러시아계 미국인 티모피(빌 나이히)가 운영하는데 여기에 막 출소한 마크(타하르 라힘)가 매니저로 취직을 한다. 러시아 식당은 마크의 솜씨로 점차 활기를 띤다. 먹을 것이 없어 여기저기를 기웃대는 클라라가 아이들 먹을 것을 챙기기 위해 출몰하는 곳이 이 러시아 식당이다.

 

마크의 변호사 존 피터(제리 바루젤)는 내심 간호사 앨리스를 사모한다. 숫기가 전혀 없는, 오로지 법률 공부만 하고 시민 변호사 일에 매진해 온 그는 앨리스를 만날 목적으로 그녀가 만든 교회의 ‘용서 모임’에 들어간다. 근데 혼자 갈 용기는 없다. 마크가 앨리스를 만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고 클라라와 마크, 앨리스가 연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매번 직장을 잃고 거리에 나앉게 된 제프(칼렙 랜드리 존스)가 거의 얼어 죽을 뻔하다가 실려간 곳도 앨리스의 병원이다. 앨리스와 제프는 무료급식소에서 만난 관계다. 제프는 앨리스를 도와 클라라와 아들들을 돕게 되고 결국 마크의 러시아 식당에서 일자리를 찾게 된다.

 

 

세상은 알고 보면 스몰 월드이고 사람의 인연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이다. 그래서 그 연결선이 하나만 끊기면, 혹은 스스로가 의도적으로 그걸 끊어내면 세상과의 연결은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진다. 론 쉐르픽 감독이 교직해 내는 씨줄날줄의 미세한 인물 관계망은 바로 그 네트워크의 핵심과 본질을 보여주려 함이다. 시나리오의 정교함과 한 씬 한 씬마다에 배치된 인물 관계도의 세공력이 꽤나 그럴듯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마크는 출소 후 자신의 변호사인 존 피터와 러시아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이때 마크의 어깨 대각선에 앨리스가 식사를 막 끝내고 일어난다. 클라라가 추위를 피해(뉴욕의 추위는 살인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라지에터에 아이들 몸을 녹일 때 교회 문을 나서는 존 피터와 마크가 어긋난다. 사람들의 인연은 몇 번의 우연한 만남이 있어야 개연성을 얻는다. 영화는 그걸 설득해 내려고 애쓰고 또 성공해 낸다.

 

세상이 어렵고 혼미할 때는 겉과 속이 다 착한 영화를 보는 게 좋다. 세상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켜 주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타인의 친절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으면 타인에게 친절할 수가 없다. 평소 잘 생각지 못했던 진리이다. ‘타인의 친절’은 그렇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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