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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스승의 날 이야기

 

어릴 적에는 스승의 날이면 학생들끼리 돈을 모아 케이크를 준비해서 파티를 했다. 반 회장을 주축으로 모여서 칠판에 풍선을 붙이고 분필로 편지를 썼다. 선생님에게 진짜 감사를 표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파티를 열어 합법적으로 수업을 빼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요즘은 김영란법이 생겨서 이런 식의 파티는 거의 없다. 주변을 둘러봐도 파티를 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교사들은 오히려 스승의 날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작년 스승의 날엔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으니 정말 아무 일이 없었고 올해엔 학생 몇 명이 꽃과 편지를 가져왔다. 편지는 받고 꽃은 사진을 찍고 돌려보내면서 사진으로 잘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학생이 아쉬워했지만 편지만으로 충분하다고 거듭 말했다. 교장선생님이 전체 교사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주셔서 감사히 받았다. 스승의 날엔 교사들끼리 그간 고생이 많았다, 앞으로 힘내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스승의 날이라고 별 다를 건 없다. 평소처럼 수업을 하고, 아이들 하교를 시킨 다음에 업무 처리를 했다. 어제와 똑같이 지나갈 뻔 했는데 오전에 받은 편지를 펼치니 감회가 생겼다. 교실에 앉아 학생들이 주고 간 편지를 읽는데 마음이 울렁거렸다. 흔한 말이지만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 사랑한다는 말이 왜 그렇게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 편지를 읽으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일을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신문에는 교사들 힘 빠지게 하는 내용이 주로 실린다.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거나 학생이 교사를 성추행, 성희롱 등의 교권침해 하는 일은 생각보다 종종 일어나고 신문에 크게 실리지 않는다. 기사 댓글을 보면 교사가 공공의 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그렇게 뭔가를 잘못한 거 같지 않은데 학부모의 적대감을 온 몸으로 받으며 1년 내내 동네북 포지션으로 지낸 적도 있었다.

 

이리 치리고 저리 치이는 한 해를 겪을 때마다 한계에 부딪혔고 진지하게 사직을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교사를 하고 있는 건 나와 주파수가 잘 맞는 아이들 덕분이다. 수업을 흥미롭게 들어주고 학교가 재밌다고 말해주는 햇살 같은 아이들. 학부모님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자식이 있었으면 사돈을 맺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로 인품이 좋았던 친구도 있었다. 여전히 허덕이면서 하루를 보내지만 사랑과 존경을 보내주는 아이들 덕분에 올해의 남은 기간을 잘 보낼 듯하다.

 

아이들이 준 편지에 답장을 쓰지 않았으니 대신 이곳에 적어본다. 우리반 친구들아 선생님에게 편지를 써줘서 고마워.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 아주 좋아. 더불어 너희가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학교가 즐거웠으면 좋겠어. 고학년이라 공부할 내용이 많아 힘들겠지만 남은 기간 열심히 버텨보자 화이팅! 추신. 2학기 때는 매일 학교에 올 수도 있대. 하루라도 빨리 매일 학교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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