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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난독일기)] 옥(獄)

 

 

말을 못하는 곳이 감옥(監獄)이다. 옥살이를 뜻하는 옥(獄)은, 두 마리의 개(犭, 犬)가 말(言)을 못하게 감시하는 모양새이다. 한자가 처음 만들어질 때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 옥살이를 하는 죄인의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교도소에서는 감방을 나눠 죄수를 가두고 말을 통제한다. 한자에 새겨진 두 마리 개의 역할은 벽과 철문과 쇠창살과 감시카메라가 대신한다. 감방은 잠을 자는 밤에도 전등이 꺼지지 않는다. 전등을 켜고 끄는 스위치가 감방에는 없다. 감방을 감시하는 전등 불빛은 취침이나 기상나팔과 상관없이 하루 스물네 시간 감방을 비춘다.

 

감옥살이는 말을 빼앗김으로 시작된다. 말과 함께 이름도 사라진다. 사라진 이름을 대신하는 것은 죄수 번호인데, 면회와 편지와 진료와 재판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없고 번호만 살아 숨 쉬는 곳이 감옥이다. 취침시간을 제외하면 바닥에 눕거나 벽에 등을 기대서도 안 된다. 노래는 고사하고 웃거나 떠들어도 곤란해진다. 화장실 벽이 낮아서, 변기에 앉아도 상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항문 속까지 검사하는 교도소에서 볼일 보는 걸 감시하는 것은 상식이다. 감옥은, 몸과 말을 함께 가두는 네모난 벽이다.

 

그럼에도 예외는 있다. 네모난 벽이라고 해서 모든 걸 완벽하게 가둘 순 없다. 이를테면 꿈이라거나 희망이라거나 사랑 같은 것이 그렇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나는 네모난 벽에 갇혀 아내와 연애했다. 흔히 말하는 캠퍼스 커플이었는데, 내가 감옥에 갇히자 아내는 대학을 중퇴하고 공장에 취직했다. 냉장고 부품을 조립하는 대우전자 하청공장이었다. 공장에서 일하고 받은 월급으로 아내는 내게 영치금과 속옷과 양말과 책을 차입(差入)했다. 편지로나마 공장생활에 대해 물으면, 답장 끄트머리에 지낼만하다고 짧게 적었다.

 

결혼은 감옥살이를 마친 이듬해에 했다. 김영삼 정권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였다. 테두리에 봉황 문양이 새겨진 사면복권 증서를 그때 받았는데 몇 번의 이사 끝에 잃어버렸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엄마와 아빠의 연애에 대해 물을 때면,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들려주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들에겐 연애와 결혼을 동시에 이루려는 욕심이 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큰 아이는 군대에 있을 때 여자 친구에게 차였고, 간호사로 일하는 딸은 교대 근무에 치여서 연애와 담을 쌓았다. 열애 중인 것은 막내뿐인데 아직 학생이라 가야할 길이 만만찮다.

 

응원이라 해도 좋고 조언이라 해도 좋다. 우리 아이들 가운데 이 글을 보는 아이가 있다면 서두르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 연애든 결혼이든 세상살이든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서두름은 서툶과 닮은꼴이어서 뜻밖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아이들아, 감옥은 멀리 있거나 따로 있지 않다. 말과 말이 서로 보듬지 않거나 통하지 못하면 그곳이 바로 감옥이다. 부부의 침실도 가족도 직장도 사회도 감옥이 될 수 있음은 마찬가지다. 너희들도 보아서 알고 있지 않느냐. 우리 사회는 거짓말이 참말을 가두고 감시하는 말(言) 감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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