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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선생님도 성교육은 처음이라

 

 

초등학교에서 보통 성교육은 보건 교사가 한다. 5학년 교육과정에 성교육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부분을 포함한 몇 차시 정도를 보건 선생님께서 수업해주신다. 덕분에 담임 교사가 직접 성과 관련된 가르치는 일이 흔치는 않다. 담임 교사 본인의 의지가 있어서 손수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하면 창체 시간을 이용해서 가르칠 수 있다. 그렇지만 굳이, 싶은 마음이 들어 포기했었다.

얼마 전에 교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성교육을 해봤다. 6학년이라 교육과정에 자세한 내용이 없는데 여학생들에게 생리팬티 기부 제안이 들어와서 겸사겸사 진행했다. 처음엔 성교육 그거 뭐 별거라고 그냥 하는 거지!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공작새 깃털처럼 부풀어 있던 자신감은 교육 자료를 정리하면서 폭삭 쪼그라들었다.

13살은 이성에 한참 관심이 많을 나이다. 이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수준까지 교육을 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일단 5학년 교과서 수준보다는 한 차원 높아야 했다. 작년에 배운 내용을 그대로 다시 가르치는 건 아이들도 나도 재미없을 것 같았다. 남자 여자 신체의 구조와 기능 정도는 벗어난 심도 있는 재구성이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어린이들의 동심을 보호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다. 북유럽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구체적으로 배운다고 한다. 한국 정서에서 아직 그 정도는 무리다. 초등학교에서 성교육을 너무 자세히 했다가는 성희롱 혹은 트라우마 제공으로 당일 저녁 인터넷 포털 사이트 메인에 실리기에 십상이다. 6학년은 아직 어린이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다.

또 다른 고민은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을 함께 두고 수업을 하면 여학생들이 부끄러움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는 글을 읽으면서 생겼다. 그렇다면 남, 여를 분리해서 수업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 부분은 다행히 온라인 쌍방향 수업이 있어서 가능했다. 여학생과 남학생 콘텐츠를 따로 만들었고, 성별마다 수업시간을 다르게 지정해서 해결할 수 있었다.

수업 당일이 되자 걱정이 들어서 이른 아침부터 눈이 떠졌다. 20대이신 옆 반 선생님은 직접 성교육을 하는 것에 큰 부담감을 토로하셨다. 해당 반 아이들의 성향을 생각하면 교사가 대답하기 어려운 돌발 질문이 나올 가능성이 농후했다. 결국 다른 내용으로 줌 수업을 진행하시고, 성교육은 온라인 콘텐츠로 올리셨다. 온라인 아침 조회를 기다리며 나도 괜히 얼굴 보며 수업을 한다고 했나 후회가 들었다.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수업이 잘 끝났다. 여학생들에게는 생리팬티와 생리컵 같은 각종 생리 도구 소개와 신체의 변화과정을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신체를 촬영해서 어딘가에 전송하면 안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했다. 아이들이 평소보다 집중해서 듣기는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몸이 꼬이는 친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보다가 적당한 시간에 수업을 마무리 했다.

반면에 남학생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OX퀴즈 형식이어서 딴짓을 할 여력이 없기도 했지만 관심의 정도가 남달랐다. 이성과 연애에 관련된 이야기에선 눈이 반짝거렸다. 남자 아이들이 가장 많이 오답을 낸 질문은 ‘성욕은 여자 남자 모두 가지고 있다’라는 질문이었다. 절반 정도가 틀렸다. 오개념을 정정해 줬다는 사실만으로 이 수업은 성공이었다.

다음에 또 성교육을 할 거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YES다. 여학생들이 이전보다 편하게 교실에서 생리 이야기를 하고 남학생들의 오개념이 수정된 걸 봤으니 안 할 이유가 없다. 다음에는 이번에 못한 더 과감한 이야기들도 할 자신이 생겼다. 처음이 어렵지 두번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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