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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하늘의 창(窓)] “애도의 권리, 또는 애도와 혐오 사이”

 

 

- ‘금기’가 된 죽은 자의 이름

 

인류학, 민속학, 종교학, 문학 그리고 예술 등의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친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J. G. Frazer)가 쓴 《황금가지(The Golden Bough)》에는 여러 “금기(taboo)”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가운데는 호주의 어느 원주민 공동체에서 죽은 이의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경우가 보고된다. 망령(亡靈)에 대한 공포 때문인데 이는 과거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관습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슬픔과 공포 그리고 기억이 희미해지게 마련이어서 이미 세상을 떠난 조상의 이름은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붙여져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기도 한다. 어떤 부족은 아기가 탄생한 지 7일 뒤 여러 조상의 이름을 의미하는 쌀들을 물잔에 떨어뜨려 그 쌀의 움직임을 보고 아기와 인연이 닿는다고 여긴 이름을 선택한다고 한다. 금기에도 수명이 있고 그건 시간의 통로를 지나 사회적 생명을 얻어 재생되기도 하는 것이다.

 

《황금가지》의 부제는 “마술과 종교에 대한 연구(A Study in Magic and Religion)”라고 되어 있다. 그 제목대로 이 책은 아득한 시절에 살았던 인간의 원시적 정신사를 다룬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의 의식세계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풍속을 다루고 있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잡성을 더욱 깊게 생각하도록 해준다. 자신이 겪고 알고 있는 세계만이 해석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 신성한 왕을 살해하다

 

“신성왕 살해(the killing of the divine king)”라는 소제가 붙은 대목은 신으로 떠받들던 왕이 노쇠하면 그 공동체의 위기가 온다고 여겨 더는 늙어 못쓰게 되기 전에 죽여 그 영혼이 계승되도록 하는 방법을 취하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고대 에티오피아의 왕들이 사제들에게 이렇게 살해당하기도 했는데 늙고 기운이 빠진 왕은 어떤 임무를 과제로 부여받고 해결하지 못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아프리카의 한 부족의 경우, 왕이 성적 능력이 감퇴되면 이를 알 수밖에 없는 왕의 부인들이 부족 원로들에게 이를 알린다. 기력이 쇠한 왕은 오두막에 갇힌 채 죽게 된다고 한다. 살아생전의 신적 권위를 누린 것의 대가는 가혹한 셈이다. 그런데 그 영혼의 계승은 살해된 왕의 시신 일부를 후계자가 먹기도 하는 관습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이 행위는 엄청난 사회적 정치적 압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원시 공동체의 생명력을 지탱하는 방법으로 선택된 의식(儀式) 또는 제의(祭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런 죽음을 통해 자신의 남아 있는 신적 생명력을 후대에 전할 수 있다는 것까지 신성왕의 책임이라고 여긴다면 이런 관습은 잔혹하기보다는 거룩한 임무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 신성한 임무는 예수의 “성(聖) 만찬(Eucharist)”에 압축되어 있기도 하다. “이 빵은 내 몸이요, 이 술은 내 피”라고 나누어준 식탁의 자리는 실제적 살해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영원한 생명을 나누는 종교적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 제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예수의 이름이 터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의 이름이 끊임없이 환기됨으로써 프레이저가 언급한 상황을 역전시키고 있다. 죽음에 대한 애도가 생명을 초대하는 방식이 되는 “마술과 종교”가 되는 셈이다.

 

 

- 제도가 된 죽음

 

 

한반도는 전 세계 고인돌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유적지이기도 하다. 영국을 포함하여 유럽 일대에도 고인돌이 남아 있으나 숫적으로든 그 모양새로 보든 이 땅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원시적 석묘(石墓) 건축기술은 남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경남 창녕군 장마(丈麻)면의 경우에는 거대한 바둑판 모양에다가 지하 내부까지 확인된 바 있는데 마치 톱으로 바위를 잘라낸 것처럼 구조가 반듯하다.

 

이런 고인돌 유적을 보고 있노라면 이 땅의 조상인 청동기 시대 인류가 죽음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불리는 이 석조(石造) 양식은 당대 공동체의 지도자를 기리는 무덤의 외부 구조물이자 비석(碑石)이기도 한데 크기가 그야말로 만만치 않다. 죽은 이의 정치적 위치와 비중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인지라 고인돌을 세우기 위한 노동력은 이 묘역의 주인공이 지닌 힘과 하나이기 때문이다.

 

매장 풍속은 인간의 역사적 진화과정에서 생겨난 산물임은 말할 것도 없다. 야만을 벗어난 문명의 출현이었다. 그저 아무렇게나 버려진 시신(屍身)이 아니라 정중하게 예를 갖춰 땅에 묻고 그 죽음을 사회적으로 기억하고 그곳을 성역(聖域)으로 삼게 되었다. 죽음의 신성화 또는 거룩하게 여기는 태도는 죽음 안에 담긴 의미를 깊이 생각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거대한 석묘로 제도가 된 죽음은 누구도 지나칠 수 없는 자리와 규모로 하나의 발언이 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는 누구의 죽음인가에 달려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을 연극무대에 올린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애도할 자와 그저 개와 독수리에게 물어 뜯겨 들판에 버려지도록 해야 하는 자의 구별을 국가가 공인하는 제도로 정해서 생겨난 참극을 전하고 있다. “애도의 권리”를 되짚어 보게 하는 작품이다.

 

 

- 《안티고네》의 줄거리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이디푸스에게는 아들 둘과 딸 둘이 있었다. 이들은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그의 아내가 된 이오카스테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이다. 아버지 라이오스 왕을 정체를 알지 못한 채 우연히 죽이고 나서 테베의 왕이 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밀과 아내로 알고 있던 여인이 어머니라는 걸 알자 스스로 눈을 찌르고는 방랑의 길을 떠난다.

 

이 이야기가 바로 《오이디푸스 왕》 그리고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에 담겨 있고,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사후(死後)의 테베 상황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그리고 있다. 오이디푸스의 두 딸은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이고 두 아들은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로, 이 아들들은 서로 권력투쟁을 하다가 둘 다 죽고 만다. 폴리네이케스가 테베의 적 아르고스와 함께 자신의 고향을 침략, 전쟁을 벌이다 일어난 사태다. 이러니 어찌 되었겠는가? 하나는 반역자, 하나는 애국자가 된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에게 내린 유배형을 떠난 뒤 죽고 왕위를 계승할 두 아들까지 이렇게 세상에 없으니 권력은 크레온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크레온은 오이디푸스의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의 동생이니 오이디푸스에게는 외삼촌이자 처남인지라 안티고네에게는 외삼촌이 된다. 기묘한 촌수이지만 바로 이런 혈통 관계로 크레온은 자기가 권력 승계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적통이라고 주장, 왕이 되었던 것이다.

 

크레온이 내린 명령은 ‘애국자 에테오클레스’는 성대한 장례를 치루나 ‘반역자 폴리네이케스’는 광야에 버려진 채 누구도 그를 장례 지낼 수 없으며 “애도조차 금지”하는 것이었다. 이를 어기는 자는 누구든 죽음이었다. 동생 이스메네가 말렸지만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장례를 치르는 일을 감행한 것이 다름 아닌 안티고네였다. 그녀는 이 일이 발각되어 결국 동굴에 갇혔다가 자살로 생애를 마친다.

 

 

- 애도를 금지한 크레온의 비운

 

그런데 사태는 이렇게만 마무리되지 않았다. 안티고네를 사랑해서 결혼까지 약속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는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이었고 그 역시 아버지 크레온에 저항,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다 안티고네 곁에서 자살로 끝맺음을 한다. 이 소식을 알게 된 하이몬의 어머니 에우리디케도 남편 크레온을 저주하며 목숨을 끊는다.

 

하나는 애도의 대상으로, 하나는 혐오의 대상으로 삼은 크레온의 결정은 그 자신과 가족 그리고 테베를 비운의 참혹함에 빠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에테오클레스는 테베를 위해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으나 폴리네이케스는 자기 아버지의 나라를 배신했다. 그러니 그는 땅에 묻힐 수 없고 그의 시신은 새와 개들의 먹이가 되도록 해야 하며 이를 모두가 두 눈 똑똑히 뜨고 봐야 한다. 이것이 나의 법, 국가의 법, 테베의 법이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이렇게 응수한다.

 

“크레온, 한갓 마침내 죽을 운명인 인간이 내린 칙령은 문자로 쓰여있지 않으나 결코 흔들 수 없는 신들의 명령을 압도할 수 없다. 신의 법은 국가의 법 위에 있고 그 시작부터 이미 영원하여라.”

 

그러자 크레온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테베 온 천지에 안티고네 하나뿐이라고 비난하고 조롱한다. 크레온은 테베의 시민들이 그의 명령이 무서워 단지 입을 다물고 침묵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이와 같은 명령은 “폭력”이라며 안티고네를 석방시켜야 한다고 일깨운 눈먼 예언자 티레시아스의 경고를 무시해버리고 만다.

 

그 결과는 이미 말했듯이 크레온이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의 죽음이라는 참극이었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 가하는 아픔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 자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셈이었던 것이다.

 

 

- 애도와 혐오 사이에서

 

안티고네는 애도를 불법으로 정한 국가의 법을 어겨 죽음이 마땅하다는 크레온에게 “나는 누군가를 혐오하고 증오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사랑을 위해 태어난 존재다”라고 당당히 밝힌다. 크레온은 아들 하이몬이 자기를 향해 미치광이라고 욕을 퍼붓고 사라지자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를 저주하지만, 무대 위의 합창대는 “사랑은 전쟁통에서도 정복당하지 않는다. 승리는 오직 사랑에게 돌아간다”라고 노래한다.

 

이 모든 상황이 비극으로 결말이 났을 때 테베의 권력자 크레온이 홀로 내뱉은 말은 허무 그 자체였다. “나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 어떤 자도 아니다. 그저 무(無) 자체일 뿐이다.”

 

“불결하거나 파렴치한 일이 일어난다면 적어도 거기에 유대인이 관련되지 않은 적이 있던가? ”히틀러의 말이다. 마사 너스바움은 그녀의 《수치심과 혐오》에서 이 말을 인용하면서 혐오가 특정집단이나 인물을 배척하고 제거하기 위한 사회적 무기로 쓰이고 있는 것을 경고한다. ‘혐오의 정치학’이 가져오는 폭력과 비인간화를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죽은 누군가의 이름이 어느 날 순식간에 금기가 되고 그걸 입에서 발음하는 순간 그 사람은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애도조차 크레온의 법을 어겨 유폐되는 사회는 행복할까? 세상에 없는 그 누군가를 기려 마음속에 고인돌을 세우고 살아생전 그가 남긴 공적(公的) 기억들을 더듬어보려는 것조차 ‘혐오의 정치학’으로 지탄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건 혹시 티레시아스의 경고처럼 “폭력”은 아닐까?

 

“그”가 떠난 지 벌써 1년이다. 우리의 안티고네는 어디에 있을까? 죽음에 대한 애도가 생명을 초대하는 방식이 되는 “마술과 종교”가 없는 곳에서 우리는 ‘크레온의 비극’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소포클레스의 비통함은 테베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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