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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 (난독일기)] 꿈

 

 

우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꿈을 꾼다. 모든 사람이 고루 행복해지는 꿈이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누군가는 유토피아(Utopia)라고 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토피아는 없다. 토머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는 공상소설이다. ‘어디에도 없다’라는 뜻의 유토피아도 그가 만든 말이다. 지은이조차 없다고 고백한 유토피아를 소설 밖에서 찾는 건 무리다. 낙원이나 천국 혹은 이상향이나 파라다이스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다. 없지만, 아니 어쩌면 없어서 더더욱, 유토피아라는 꿈을 현실이라는 종이에 그리고 싶은지 모른다. 꿈을 현실로 바꾸려는 시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물론, 시도하거나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명칭과 내용은 서로 다르다. 다름에도 우리가 그 꿈에 애정을 쏟는 것은, 그들이 그리려는 꿈의 배경이 ‘누구나 행복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아, 누구나 행복한 사회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리는 꿈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그들이 꿈꾸는 누구나 행복한 사회는 어떤 세상일까. 나는 그들의 꿈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전에 ‘누구나 행복한’이라는 어감의 완벽함에 압도당하고 만다. 고백하건대 나는 너무도 불완전한 사람이다. 살아낸 세상살이 또한 불완전하기 짝이 없어서, 완벽이라는 것의 일부가 될 나의 모습이 선뜻 그려지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유토피아는 동화 속 어린왕자가 사는 ‘소혹성 B612’ 같은 것일지 모른다. 지브롤터 해협에 가라앉았다는 전설의 섬 아틀란티스를 건져 올려서, 누구나 행복한 사회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는 초현실주의 작가의 시나리오 같다고나 할까. 없음에서 있음을 촬영하려는 것은 다큐멘터리라 할 수 없겠으나, 꿈이란 실재하지 않음에서 실재할 수 있음을 찾는 것이라서, 지구별에 쏟는 그들의 안간힘은 결코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니다.

 

그들은 천국이나 내세(來世)처럼 멀고 아득한 곳에서 꿈을 찾지 않는다. 그들이 꿈꾸는 누구나 행복한 사회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금 여기에 있다. 보고 듣고 말하는 지금에 있고, 입고 먹고 잠을 자는 여기에 있다. 세상살이에 짓눌려 아파하는 사람들 속에 있고, 사람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의 허울 속에 있다. 몸은 허울 속에 갇혔지만 그들은 갇힌 몸을 뛰어넘어 허울 밖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것이 그들의 꿈이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그들을 좋아한다. 그들이 꿈꾸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응원한다.

 

유토피아는 없다. 그래서 꿈이다. 그리 보면, 꿈을 꾸는 지금 이 순간이 유토피아다. 꿈을 꾸자. 막힘없이 나아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 꿈을 꾸자. 주저 없이 일어나 도란도란 노래하는 꿈을 꾸자. 어림과 늙음이 촘촘하게 채워지는 나이테로 꿈을 꾸자. 손바닥과 손등이 마주 보고 맞절하는 꿈을 꾸자. 북과 남으로 천지사방에 장마당 열리는 꿈을 꾸자. 동과 서로 오만가지 웃음꽃 만발하는 꿈을 꾸자. 그것 말고는 우리에게 유토피아란 없다. 그러니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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