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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모두의 운동장

 

코로나 때문에 1년 반 동안 거의 운동장을 사용하지 못하면서 운동장 곳곳에 초록색 풀이 무성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남자아이 하나가 창밖으로 운동장을 바라보다가 풀을 조금만 더 자라게 두면 천연 잔디구장이 될 거 같다고 좋아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수풀처럼 변해가는 운동장을 보다 못해 가끔 직접 잡초 제거를 하셨지만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공간에서 승자는 이름 모를 잡초였다. 풀들은 여름 햇볕을 받고 더 맹렬하게 자라고 있다.

 

운동장을 떠올리면 초등학교 때 남자아이들과 축구를 하며 뛰어다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새로 지은 건물에 구색 맞추기 식으로 작게 운동장이 있었는데 그나마 1년 뒤에 별관이 신설되면서 운동장 크기가 더 줄어들었다. 그곳에서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공을 차며 놀았다. 물론 그렇게 놀았던 여학생은 나뿐이었다.

 

내가 유년 시절 내내 살던 아파트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나와서 성별에 상관없이 어울려 놀았다. 나는 언제나 놀이터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아이들과 놀 때도 있었지만 남자아이들이 하는 축구와 야구 같은 운동을 자연스럽게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한 여자 친구들이 내 주변에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점심시간에 남자아이들이 운동장 한가운데서 축구를 하는 동안 여자 아이들은 운동장 한쪽의 놀이터에서 술래잡기하거나 그네를 탔다.

 

체육시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체육수업이 끝나고 자투리 시간이 남으면 남자아이들은 축구공을 받아서 운동장을 누볐는데 여자아이들은 배구공을 받아 운동장 구석진 곳에 라인을 그려 놓고 피구를 했다. 피구는 공에 맞으면 탈락하는 게임이라 피하려고 애쓰다가 공에 맞으면 아프고 분했던 기억이 있다. 피구 할 때 공에 맞은 기억 안 좋게 남아서 공으로 하는 운동을 싫어하게 된 친구도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초등학교 때가 아니면 격렬한 운동을 경험해볼 기회가 거의 없다. 운동을 좋아했던 나조차도 여자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공을 직접 만질 기회가 거의 사라졌다. 여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중 여고의 점심시간 운동장은 황량한 벌판 그 자체였다. 체육수업이 있었지만 힘도 맥아리도 없이 병든 닭처럼 앉아있는 우리를 보며 체육 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했다. 그나마 CA활동으로 배드민턴부에 가입해서 3년 동안 열심히 배드민턴을 친 거로 운동의 구색을 갖췄다. 그마저도 안 했으면 땀 흘릴 일이 전혀 없었을 거다.

 

어릴 때 운동을 경험해봐야 어른이 되어서도 운동하는 생활체육인의 삶을 살 수 있다. 어린 시절 사교육으로라도 태권도를 오래 배운 사람과 살면서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커서 스포츠를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생긴다. 남자들이 나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조기축구회나 야구단, 농구 같은 스포츠 팀 스포츠를 즐기는 반면에 팀 스포츠를 즐기는 여자 어른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릴 때 다양한 종목을 적어도 몇 년 동안은 꾸준히 접해봤어야 그 종목에 재미를 느끼고 어른이 되어서 다시 찾지 않을까.

 

지금처럼 학교 운동장 양 사이드에 한 쌍의 축구 골대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 농구 골대가 있거나 없는 모습이라면 여자아이들은 앞으로도 스포츠를 접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쌍의 축구 골대를 차지하기 위해 남자아이들 사이에도 점심시간에 종종 다툼이 일어나는 판에 여자아이들이 낄 자리는 없다. 운동장 전체를 가로지르는 축구 골대 대신에 우리 학교처럼 운동장이 매우 넓다면 풋살장 규격으로 골포스트를 두 쌍 만들어서 남자, 여자가 따로 이용할 수 있게 지도하거나, 다양한 종목의 코트가 들어서면 아이들 전체가 사용하는 모두의 운동장이 될 수 있을 거다. 지금은 반쪽짜리 운동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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