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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 (난독일기)] 또

 

 

 

창을 열면 물안개가 짙다. 늘 그렇다. 강(江)에 기대 사는 마을의 아침은 물안개로 시작된다. 안개는 강과 산과 들의 경계를 지우고 기억에 박힌 익숙함 마저 지운다. 물까마귀 울음이 안개 너머에서 날아와 단풍나무 이파리를 흔든다. 안개에 갇힌 까마귀 울음은 반듯하게 착지하지 못하고 마당에 나뒹군다. 강을 건너온 까마귀 울음에 잣나무 숲에 사는 딱따구리가 화답한다. ‘까악’은 애달프고 ‘딱딱’은 절박하다. 둘의 울음은, 전선(戰線)을 사이에 두고 암호를 주고받는 스파이들의 교신 같다.

 

강을 덮은 물안개는 전쟁의 참상을 덮는 연기(煙氣) 같다. 물안개를 따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미얀마 로힝야족 마을이 흘러간다. 물안개의 발걸음은 강물의 흐름만큼이나 더디다. 물안개의 느린 발걸음은, 링거에 의지하고 숨을 뱉는 다섯 살 아이의 맥박 같다. 강을 덮은 물안개가 강을 거슬러 나아간다. 강도 따라 거꾸로 흘러가는 것 같다. 죽임으로 역사를 거스르는 반역의 걸음걸이도 저러할까. 비틀거리려는 아침, 창틀에 손을 짚고 거꾸로 흐르는 물안개를 바라본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물안개가 자욱하기는 인터넷 세상도 마찬가지다. 새벽 내내, 인터넷 창(MS Windows)을 열고 물안개에 젖은 세상을 보았다. 지구촌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신음할 때, 세계 최대의 부자 열 사람은 540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중 하나인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의 재산은 223조 8705억 원이다. 그는 최근 우주여행을 하였다. 지구 대기권 밖에서 무중력 상태를 즐기다 돌아오는 게 여행의 전부였다. 그가 황홀한 눈빛으로 대기권 밖에서 지구를 내려다볼 때, 지구에서는 2억 명의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고 420만 명이 죽었다.

 

죽거나 병듦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페르세우스 유성은 전 세계의 밤하늘에서 고르게 관측되었다. 사람들을 향해 쏟아진 별똥별은 지갑의 무게와 상관없이 공평했다. 공평하게 쏟아지는 별똥별을 향해 사람들은 마음의 창을 열었다. 아프간을 철수하는 미군도, 미군이 없는 도시를 탈환하는 탈레반도, 밤하늘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소원을 비는 대상은 서로 같았지만, 대상을 향해 기원하는 소원은 서로 달랐다. 서로 다른 소원들이 별똥별로 향할 때,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았다.

 

창을 열면 숨이 가쁘다. 늘 그렇다. 도시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하루는 가쁜 숨으로 시작된다. 가쁜 숨은 골목과 계단과 횡단보도를 덮고 부족한 잠마저 툴 털어낸다. 새벽 첫차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지하철역 플랫폼을 흔든다. 동여맨 구두끈이 주인을 따라 지하철역 계단을 오른다. 오르고 내릴 때, KF-94 방역 마스크로도 가쁜 숨은 가려지지 않는다. 가쁜 숨을 감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꾸벅 존다. 졸음을 버티는 사람들 앞으로 새벽 첫차의 문이 덜컥 열린다. ‘덜컥’ 열리는 문 앞에서 ‘꾸벅’ 조는 사람들의 아침은 속절없다.

 

또, 그렇게 하루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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