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의 타깃은 정치권력이 아닌 언론자본권력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허위조작보도를 남발하는 언론사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려는 데 대해 반대하는 언론노조 윤창현 위원장의 말이다. “권력 압제에 맞서 언론을 되찾아오는 게 개혁 본질이었다.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정권이 언론에 위험을 가져다줄 수 있는 법안을 이렇게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 말에 대해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을 꿰뚫는 명언”이라고 추켜세웠다.(UPI 뉴스) 또 이 말에 대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의 심석태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항상 일관성을 보여주시는 강준만 선생님 글. 언론중재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 라고 칭송했다.
1987년 6월 항쟁까지 언론의 문제는 독재정권에 부역하는 언론에 대한 정치투쟁이었다. 그러나 6월 항쟁으로 독재권력이 붕괴된 이후는 스스로 권력이 되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민주주의를 왜곡하기 시작한 언론권력에 대한 투쟁, 즉 언론개혁 시민운동으로 바뀌었다.
김중배 선언은 그러한 현실의 변화를 정확하게 짚어낸 진짜 ‘명언’이었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에서 해임된 김중배 선생은 1991년 9월 6일의 환송회 자리에서 언론인은 앞으로 거대한 자본권력, 즉 권력이 된 언론자본에 대해 저항해야 할 것이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윤창현 위원장이나 강준만 선생님이나 언론법 전문가 심석태 교수가 의도하는 것은 언론중재법 개정을 정권에 의한 언론탄압이라는 프레임으로 둔갑시켜 여론을 호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윤창현은 그래서 이명박 정권의 MBC PD수첩 탄압과 1970년대 동아·조선투위를 거론했을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강준만이 반색을 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PD수첩 탄압은 군사정권의 ‘압제’와는 다르다. 언론권력과 손을 잡고 기득권집단 공동의 목표를 위해 공조했던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나?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의 초석을 놓고 언론의 자유를 쟁취하기까지는 수많은 민주열사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 미완성의 민주화마저 짓밟는 노태우 정권에 대해 학생들이 다시 저항했던 1991년 5월의 민주화 투쟁도 있었다. 그 투쟁은 불행하게도 언론의 허위조작보도로 인해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시민운동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다.
젊은 언론학자들은 언론개혁을 위한 학술운동을 전개했고, 민언련은 시민운동단체로서의 체제를 갖추고 언론개혁운동에 돌입했다. 민언련이 이른바 안티조선(조선일보반대)운동을 주도한 것도 언론권력에 대한 저항이었다. 언론노조는 신문노조가 사실상 와해된 상태에서 방송노조를 중심으로 해서 언론민주화운동에 매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권력의 횡포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래서 근래 제기된 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다.
한국언론학회 회장단은 8월 16일 “평생을 대학에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가르친 언론학자로서의 요구”라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철회하고 민주적 의견 수렴에 나서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언론·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참으로 딱하다.
정은령 서울대 팩트체크 센터장은 8월 18일 한국언론학회가 주최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현안 토론회’에서 “어떤 나라에서도 언론사를 허위·조작정보 생산자로 규정하지 않는다.” 라고 주장했다. 되묻는다. 어떤 민주국가에서 언론사가 허위·조작정보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대량으로 생산해내는가? 팩트체크와 미디어 리터러시 강화가 답이라고? 그걸로 해서 가짜뉴스에 대한 ‘집단 면역’이 형성되려면 10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경향신문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통과된 다음날인 8월 20일 1면 톱과 3면 통으로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여당이 밀어붙이는 언론중재법, 결코 독단·독주할 법 아니다’라는 사설도 실었다. “법안에는 언론자유를 훼손·위축시키고 보도 사각지대를 키울 대목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조중동 못지않은 3류 추리소설이다. 사실은 오히려 제구실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내용으로 후퇴했다.
언론·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라고 할 수 있다. 하여 천부적 권리라고도 하고 헌법에서도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고의 본능적 욕구인 성욕도 무제한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성폭행 범죄에 대해 엄벌에 처한다고 해서 성행위의 자유가 위축된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허위조작보도는 엄벌에 처해야 할 범죄행위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허위조작보도를 근절시키기에 너무나 부족한 법이지만 일단 만들어놓아야 한다.
노회찬의 촌철살인 ‘명언’을 생각해본다. “동네에 파출소가 생긴다니까 우범자들이 싫어하는 거나 똑같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