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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아니 왜 무역전쟁을 여기서 해?

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 데스틴 크리튼

 

9월 2일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평소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몇 가지 지점에서 기이한 영화다. 첫째, 이건 할리우드 영화인가 중국 영화인가. 둘째, 이건 마블 영화인가 중국 무협 영화인가. 셋째 이건 미국과 전 세계 글로벌용 영화인가 아니면 중국어권 아시아에서 인기를 모을 작품인가. 모든 질문에는 앞에 답의 방점이 찍혀 있다.

 

‘샹치’는 중국 무협 영화를 할리우드식 액션으로 가공해 나온 색다른 작품이다. A+B를 해서 비교적 다른 C가 나왔다. 거칠게 비교하자면 이안의 ‘와호장룡’을 ‘캡틴 아메리칸’ 판 SF 액션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생각보다는 재미있다. 그런데 또 막상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진짜 기이한 생각이 든다. 아니 어떻게 주연 샹치(시무 리우)보다 조연인 쑤 웬우(양조위)가 더 멋있을까. 영화는 아들보다 아버지를 더 돋보이게 찍었다. 이건 영화의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일까 아니면 의도적인 연출일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영화가 과연 중국에서 상영될 수 있을까, 없을까. 아니나 다를까. ‘샹치’에 대해 중국 정부는 최근 상영금지 조치를 내렸다. 보다 정확하게는 중국 내로 들여오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유는 영화가 중국인을 모욕했다는, 다소 불분명하고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식인 것이다.

 

한 마디로 감히 미국이 중국의 이야기를 액션 블록버스터로 만드느냐는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영화 제작과 전 세계 배급, 그 이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종의 미-중, 중-미 무역전쟁이자 외교 갈등의 한 축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는 정치다. 정치도 영화다.

 

생각해 보면 미국은 이번에 가장 중국적 오락의 정수라는 무협의 이야기를 할리우드에서 가장 오락적 장치의 정수라는 마블 액션으로 만들어서는, 전 세계 시장을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그걸 중국이 좋아할 리가 만무하다. 중국은 자기 콘텐츠 분야에서 미국에게 시장 주도권을 뺏긴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는 ‘샹치’를 통해 앞으로 이런 부류의 영화에 있어 시장 선점효과를 단단히 거둔 셈이 됐다. 완벽한 경제 전쟁의 일환이 아닐 수 없다.

 

 

‘샹치’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실로 유치찬란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껏 나온 많은 무협소설들이 다 원래 그랬다. 무림강호에는 사(邪)파와 정(正)파가 있고, 이들은 9대문파로 나뉘는데 소림/무당/곤륜/아미파 등이다. ‘샹치’에 이 9대 문파가 나온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에 준하는 무술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어쨌든 천년을 살아 온 악의 우두머리(라기보다는 어둠의 세력을 대변하며 세상의 권력만을 추구한 자)가 있는데 그가 바로 쑤 웬우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한쪽에 각각 다섯 개씩, 양팔에 10개의 링을 차게 되고 그걸 이용할 수 있는 무술을 갖췄는데 이 링이 그로 하여금 초인적인 힘과 불사의 능력을 갖게 했다. 그는 하다 하다 이 세상 최고의 고수들이 산다는 신비의 숲까지 쳐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여인 쑤 샤링(장멍얼)을 만나게 된다. 둘은 곧 사랑에 빠지게 되고 아이 둘을 낳는다. 그 아이 중 큰아이가 바로 샹치다.

 

아버지 쑤 웬우는 이제 링 열 개의 초능력을 쓰지 않는다. 악의 대표직도 사임한다. 여자와의 평범한 생활에 빠져든다. 그런데 그런 부부를 세상(무림)이 가만 놔두지 않는다. 아내는 괴한들에게 살해되고 아버지 쑤는 다시 양팔을 텐 링즈로 채운다. 곧 아들에게 엄마를 죽인 자의 복수를 시키지만 아들 샹치는 그런 참혹한 복수극이 이어지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아버지 곁을 떠난다.

 

 

나름 엄청난 고수인 샹치는 이름을 션이라 바꾸고 캘리포니아에서 호텔 주차요원으로 신분을 숨기며 살아간다. 그의 동료로는 버클리 대학을 나와 자유롭게 살아가겠다며 주차 일을 하는 중국 이민 3세인 케이티(아콰피나)가 있다. 이들은 곧 샹치의 누이동생 리(진법랍)와 함께 아버지에 맞서 악의 근원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려 애쓴다. 그런 젊은 아이들을 죽은 엄마의 언니인 이모 난(양자경)이 돕는다.

 

이상하게도 이런 유아적인 이야기는 무협소설로 읽거나 영화로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선악이 분명한 데다 읽거나 보는 자신을 정파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거나 역할을 대입하게 되면서 대리만족을 강하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심리학적으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샹치’는 선과 악을 넘나드는 캐릭터, 곧 ‘쑤 웬우=양조위’ 캐릭터로 단순 액션 블록버스터의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양조위는 ‘아주’ 적당히 늙고, ‘아주’ 적당히 말랐는데 그래서 이 영화에서 ‘아주’ 최고의 매력을 선보인다. 영어 발음이 너무 좋다. 목소리가 양조위답지 않게 저음에 허스키하다. 배우는 목소리까지 바꾼다. 양조위가 얼마나 뛰어난 배우인가를 마블에서 보여주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래저래 이제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영어가 필수라는 점을 보여주는 셈이어서(양조위조차 영어를 하니까) 한편으로는 씁쓸하게도 만든다.

 

‘와호장룡’을 시진핑 판으로 만들어야지 ‘캡틴 아메리칸’ 판으로 만들었으니 중국이 삐질 만도 하겠다. 우리야 뭐 딱히 누구 편을 들 필요는 없다. 영화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배가 산으로 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독인 데스틴 다니엘 크레톤이 그러려고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는 하와이계 미국인이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어릴적 무협지 좀 꽤나 읽었다고 하는 성인들의 킬링타임용 영화이다. 한편으로는 영화 밖 세상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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